우리에겐 두 가지 인생이 있다.
두 번째 인생은
우리 인생이 한 번뿐임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이 묵직하고 서늘한 명언을 가장 먼저 띄우며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가만히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으면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일상의 분주함에 파묻혀 숨 쉬듯 당연하게 잊고 지내던 진실, 바로 우리 삶이 언젠가는 멈추게 될 유한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평소에 마치 두 개의 심장이나 무한한 리셋 버튼을 가진 게임 캐릭터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를 소비하곤 합니다. 정작 내 삶에서 가장 빛나고 중요한 순간들은 모두 불확실한 내일로 미뤄둔 채 말입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우리의 첫 번째 인생은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는 시간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지금의 즐거움을 참아야 한다고 배웠고, 취업 준비생일 때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고생이 끝날 거라 믿으며 오늘 하루의 행복을 기꺼이 유예했습니다.
막상 취직을 하고 나면 또 어떤가요? 승진을 하고 나면, 통장 잔고가 얼만큼 든든하게 채워지고 나면, 나중에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하고 나면이라는 수많은 전제 조건들을 끊임없이 달아두고 진짜 내 삶은 늘 뒷전으로 밀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으며 실컷 웃고 떠드는 시간, 훌쩍 배낭 하나 메고 낯선 도시의 골목길을 걷는 설레는 여행, 평소 꼭 한 번쯤 배워보고 싶었던 취미 생활 같은 진짜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일들은 늘 우선순위의 가장 밑바닥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이라는 낡은 책에 책갈피만 수십 개를 꽂아둔 채 단 한 장도 제대로 넘겨보지 못한 행복들이 마음의 서랍장 속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쌓여만 갑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꼭 해야지 하고 미뤄둔 그 언젠가는, 세상 그 어떤 달력에도 잉크로 적혀있지 않은 환상 속의 날짜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말이죠.
그렇게 기계처럼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뜨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 쳇바퀴 도는 일상을 무감각하게 버텨내던 어느 날, 우리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현듯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연히 바라본 거울 속에서 어느덧 훌쩍 나이 들어버린 낯선 내 얼굴을 마주했을 때, 혹은 가까운 지인의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으며 죽음이라는 단어가 결코 멀리 있는 남의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체감했을 때 우리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쏜살같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 지난 청춘과, 내게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서늘하고도 맑은 자각.
바로 그 순간이 우리의 두 번째 인생이 힘찬 첫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는 위대한 출발선이 됩니다. 내게 주어진 이 호흡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찰나의 현재만이 내가 온전히 통제하고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걸 뼛속 깊이 새기게 되는 것이죠.
이런 자각을 안고 두 번째 인생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의 색깔과 삶의 질감은 이전과는 완벽하게 다른 차원으로 변하게 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내 주변을 시끄럽게 어지럽히던 불필요한 소음들이 썰물 빠지듯 차분하게 가라앉는다는 것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며칠 밤낮을 이불을 걷어차며 씩씩거렸을 타인의 무례한 행동이나, 나를 깎아내리고 억지로 통제하려는 타인의 뾰족한 시선들이 더 이상 내 영혼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나에게 주어진 이 맑고 보석 같은 시간들을, 고작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험담하거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는 데 낭비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도 아깝고 소중하다는 확고한 기준이 마음속 깊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텅 빈 그 자리에는 길가에 무심코 피어난 작은 들꽃 한 송이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와 다정한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하는 여유가 부드럽게 스며듭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획일적인 기준에 나를 억지로 꿰맞추느라 끙끙대는 대신, 온전히 내 가슴이 뛰는 대로 하루의 시간표를 주체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한 주도권이 비로소 자라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대단한 업적을 단숨에 이루거나 하루아침에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위인전 속 삶을 살겠다는 거창한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오늘 당장 눈앞에 놓인 행복을 온몸으로 누리겠다고 결심하는 아주 작고 사소한 태도의 변화에서부터 조용히 출발합니다.
아끼다 똥 된다는 옛말이 한 치의 틀림이 없듯, 찬장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두었던 비싸고 예쁜 그릇을 오늘 평범한 저녁 식탁에 과감하게 꺼내어 밥을 담아 먹어보는 것. 옷장 속에서 특별한 날이 오기만을 몇 년째 애타게 기다리던 근사한 외투를, 그저 맑은 하늘이 기분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장 툭 걸쳐 입고 동네 산책을 나서는 가벼운 발걸음. 바로 이런 소소하고 경쾌한 실천들이 두 번째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어가는 가장 확실한 증명서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출근하기 싫다'는 무거운 한숨 대신, '오늘은 퇴근길에 그 예쁜 카페에 들러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지' 하는 작은 기대감으로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눈부시게 성공한 두 번째 인생을 마음껏 유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살다 보면 또다시 팍팍하고 숨 막히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나도 모르게 첫 번째 인생의 무기력한 관성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는 날도 분명 찾아올 겁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카드값 명세서와 턱없이 오르는 대출 이자, 복잡하게 얽혀버린 껄끄러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가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올 때면,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이런 낭만적인 깨달음조차 그저 배부른 소리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잠시 걷던 길을 멈춰 서서 깊은숨을 한 번 내쉬고, 오늘 함께 나눈 이 문장을 다시금 마음속에서 천천히 되새김질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 스쳐 지나가면 천금을 주어도 절대 되감기 할 수 없는 생방송 같은 이 유일한 인생에서, 오늘 하루 종일 우울함과 짜증이라는 주파수에 채널을 고정해두기엔 남은 날들이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깝지 않으신가요.
자, 이제 이 긴 글의 끝자락에서 여러분 스스로에게 아주 조용하고 솔직한 질문을 한 번 던져볼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몇 번째 인생의 궤도 위를 걷고 계신가요. 아직도 모든 행복의 이유와 삶의 목적을 알 수 없는 훗날의 내일로 미뤄둔 채 그저 꾸역꾸역 버티고 견디기만 하는 첫 번째 인생의 좁은 대합실에 머물러 계시지는 않은가요.
만약 그렇다면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과감하게 두 번째 인생의 화려하고 가슴 벅찬 막을 힘차게 올려보시기를 조심스레, 그러나 굳게 권해드립니다. 거창한 맹세나 완벽하게 짜인 계획표는 전혀 필요 없습니다. 지친 퇴근길에 평소 지나치기만 했던 꽃집에 들러 수고한 나 자신에게 가장 향기로운 꽃 한 송이를 쑥스럽게 선물해 보거나, 늘 다이어트 걱정에 꾹꾹 참기만 했던 달콤하고 부드러운 조각 케이크를 오늘만큼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행복하게 한 입 베어 무는 그 작은 행동 하나면, 닫혀있던 두 번째 인생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에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인생이라는 길고도 짧은 한 편의 영화에서, 카메라 앵글의 한가운데 서야 할 진짜 주인공은 단연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기왕 단 한 번만 상영되고 막을 내릴 특별한 영화라면, 눈물 흘리고 자책하며 남의 눈치만 보는 우울한 장면보다는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과 실없이 터져 나오는 경쾌한 웃음이 가득한 명장면들로 스크린을 꽉 채워 나가야 억울하지 않겠어요.
여러분의 앞으로 남은 날들이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진짜 나의 시간들로 촘촘히 채워지기를, 오늘 방금 막 시작된 두 번째 인생의 매 순간이 봄날의 따스한 햇살처럼 눈부시게 반짝이기를 진심을 다해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더 이상 주저하거나 미루지 마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야 할 당신의 진짜 삶과 완벽한 행복은 언제나 바로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씩씩한 결단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