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어요.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고 굳이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가끔 그렇다는 느낌보다는 괜찮은 날보다 기분이 처져 있는 날을 더 의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서 속상한 거라면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할 텐데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으니 저도 제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침부터 유난히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있고 별문제 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는 날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다툰 것도 아니고 속상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닌데 그냥 모든 게 귀찮게 느껴집니다.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시작하기 싫고 가능하면 가만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할 정도는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평범하게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별문제 없는 건가 싶었습니다. 정말 힘들다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거든요.
그런데 겉으로 평소처럼 지내는 것과 기분이 괜찮은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할 일을 끝내도 별로 개운하지 않고 재미있는 걸 봐도 예전만큼 즐겁다는 느낌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루가 끝나면 오늘도 그냥 지나갔다는 생각만 들 때가 많아요.
혼자 있을 때는 더 생각이 많아집니다. 내가 지금 뭐가 힘든 건지 이유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명확하게 떠오르는 게 없어요. 이것 때문인가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 이렇게까지 기분이 가라앉을 일인가 싶고, 다른 이유를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힘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니까 괜히 제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오늘은 궁금해서 우울증 관련 자가점검을 한번 해봤습니다. 그냥 현재 상태를 확인해보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결과를 보고 조금 놀랐어요.
자가점검 결과가 34점으로 심한 우울 상태라고 나왔습니다. 사진에 나온 내용을 보니 30대 남성 평균은 24점이고 제 점수는 그것보다 10점 높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전체 참여자 가운데 상위 29퍼센트 구간이라는 내용도 나왔습니다.
물론 자가점검 결과 하나만 보고 제가 어떤 상태라고 단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화면에도 자가점검 참고용 지표라고 적혀 있어서 이 점수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막연하게 요즘 기분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과 숫자로 결과를 직접 보는 건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특히 심한 우울 상태라는 문구가 생각보다 신경 쓰입니다. 저는 제가 그렇게까지 힘든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크게 무너진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상을 전혀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결과가 너무 높게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최근에는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 자체에 조금 익숙해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분명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도 계속 반복되면 그냥 오늘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게 되잖아요. 예전과 비교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하나씩 생각해보니 제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거나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잊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잠깐 괜찮아졌다가도 다시 별 이유 없이 가라앉는 일이 반복됩니다. 좋은 일이 없어서 우울하다기보다 좋은 일이 있어도 기분이 예전만큼 올라오지 않는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비슷합니다. 막상 만나면 평범하게 이야기하고 웃기도 하는데 만나기 전에는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 때가 있어요. 혼자 있으면 편할 것 같아서 약속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정작 혼자 오래 있으면 생각이 많아져서 또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다 보니 제가 단순히 지쳐 있는 건지, 기분이 일시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것 같다가도 이미 이런 날이 계속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기다려도 되는 건가 싶어요.
자가점검 결과를 보고 나서는 오히려 평소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 중 언제 기분이 많이 가라앉는지, 예전에 좋아했던 일을 여전히 즐겁게 느끼는지, 잠을 자고 나면 좀 나아지는지 같은 것들이요. 점수 하나에 계속 매달리고 싶지는 않지만 제가 그동안 별일 아니라고 넘긴 변화까지 계속 무시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기분이 가라앉는 상태가 반복된다는 게 가장 신경 쓰입니다. 뚜렷한 원인이 있으면 그걸 해결해보겠는데 무엇부터 살펴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괜찮은 날도 있으니까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싶다가도 자가점검에서 34점이 나온 걸 생각하면 그냥 지나치기에는 높은 결과인가 싶기도 합니다.
비슷하게 일상생활은 어느 정도 하고 있는데 별일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 계속됐던 분들이 계신가요. 자가점검에서 예상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을 때는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평소 생활은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계속 지켜보셨는지, 아니면 이런 단계에서도 상담이나 다른 도움을 알아보셨는지 경험이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