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식물에 물 주는 날짜를 적어두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작은 식물을 키웁니다. 예전에는 아침에 커튼을 걷으면서 잎을 살펴보는 게 즐거웠어요. 흙이 말랐으면 물을 주고 새잎이 나면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화분이 눈에 들어와도 그냥 지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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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잎이 시들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물을 언제 줬는지 기억이 안 났어요. 대충 며칠 전이겠지 했는데 흙이 아주 말라 있더라고요. 급하게 물을 주고 나서 휴대폰 달력에 '화분 확인'을 적었습니다. 이제는 좋아서 돌보던 걸 일정으로 관리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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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식물만 그런 건 아닙니다. 빨래를 개는 일, 친구 메시지에 답하는 일, 가끔 산책하는 일까지 하나씩 알림을 설정했습니다. 알림이 울리면 하기는 해요. 그런데 알림을 지우고 나면 뭘 해냈다는 기분보다 또 하나를 처리했다는 느낌만 남습니다. 예전에는 제 생활을 제가 알아서 굴린다는 기분이 있었는데요. 며칠 전 친구가 새 화분을 선물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사실 예쁜 식물을 보는 건 여전히 좋아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 더 책임지는 일이 무서웠어요. 친구는 취향이 바뀐 줄 알았을 겁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슬픈 일이 있는 건 아닙니다. 회사에선 웃고 일도 합니다. 그런데 집에 오면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도 어딘가 정지된 공간 같습니다. 새로운 잎을 발견해도 예전만큼 반갑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던 것들과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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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라는 말을 쉽게 붙이고 싶진 않지만 이런 무기력함이 오래 이어져서 상담을 고민 중입니다. 제가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부분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분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오늘도 달력 알림을 보고 화분에 물을 줬습니다. 식물은 아직 살아 있는데, 제가 예전처럼 그걸 기뻐할 날이 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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