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외롭지도 않네요

요즘은 하루를 보내면서 누구와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조용하게 지내다 보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거나 조금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요즘은 그런 감정조차 잘 느껴지지 않아요.

 

처음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조용히 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편안하다는 느낌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아요.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이 즐겁거나 만족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외롭지 않아서 괜찮은 건지, 외로움이라는 감정마저 무뎌진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전화나 연락이 와도 반갑다는 생각보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부터 고민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싫은 것은 아닌데 대화를 이어가는 일이 예전보다 번거롭게 느껴져요.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평범하게 대답하고 웃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화가 끝나고 나면 아쉽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다시 조용해진 시간이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채 흘러갑니다.

 

예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었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혼자 생각하다가 넘기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제 감정을 표현하는 일 자체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크게 기쁘지 않고, 서운한 일이 생겨도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요.

 

사람이 그립지 않은 것보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 같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입니다.

 

물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람마다 편안함을 느끼는 방식도 다르고,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 감정의 변화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뿐 아니라 평소 즐겁게 느꼈던 일에도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요.

 

우울한 기분이라고 하면 슬프거나 눈물이 나는 모습부터 떠올렸는데, 요즘 제 모습은 오히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가 단순히 조용한 생활에 익숙해진 것인지, 마음이 지쳐서 그런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네요.

 

어떤 날에는 하루가 끝나갈 때까지 누구와도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아 스스로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혹시 다른 분들도 사람들과 연락하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면서 외로움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던 적이 있으신가요? 혼자 있는 것이 편안한 것과 감정이 무뎌지는 것은 어떻게 다른지 다른 분들의 경험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hub-link

지금 우울증을 주제로 4.8만명이 이야기 중

댓글4
  • 익명2
    BEST
    슬픔이나 눈물보다 '무감각'이 더 무서운 신호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글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네요. 
    
    예전에는 재미있는 걸 공유하고 싶고 속상한 걸 털어놓고 싶으셨다는 구절에서, 원래 작성자님이 얼마나 다정하고 생기 있는 분이었는지가 느껴져서 더 마음이 쓰입니다. 기쁨도 서운함도 안 느껴진다는 건 마음이 너무 크게 다치거나 지쳐서 '나를 보호하려고' 잠시 감정 스위치를 꺼둔 번아웃 상태에 가까운 것 같아요.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외로워할 힘조차 없는 거죠. 다른 사람과의 연락이 숙제처럼 느껴진다면 당분간은 굳이 에너지를 쓰지 마시고, 그저 나 자신이 오늘 따뜻한 밥 한 끼 먹었는지, 햇볕은 쬐었는지 아주 사소한 내 상태만 챙겨주세요. 
    
    마음의 에너지가 차오르면 감정의 통로도 조금씩 다시 열릴 거예요. 혼자가 아니에요.
  • 익명1
    BEST
    글을 읽는 내내 제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저도 우울증이 깊어졌을 때 슬픈 것보다 그냥 세상의 볼륨이 0이 된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안 느껴지는 게 제일 무서웠거든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대화하는 에너지 자체가 바닥나서 번거롭게 느껴지는 건데, 외로움마저 무뎌진 내 모습에 자책하게 되더라고요. 
    
    작성자님, 혼자 있는 게 편한 것과 마음이 지쳐 방어기제를 켜둔 건 분명 다른 것 같아요. 지금은 마음의 배터리가 방전돼서 잠시 감정 차단막을 내려놓은 상태일 뿐이에요. 
    
    유난히 내 상태가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겠지만, 너무 서두르지 말고 그저 숨 쉬고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계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힘내세요.

우울증 인기글

우울증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