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처음에는 그런 능력이 없을지라도
결국에는 할 수 있는 능력을 확실히 갖게 된다.
- 마하트마 간디 -
인도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이 문장을 오늘 글의 가장 첫머리에 띄워보며 깊은 숨을 내쉬어 봅니다.
이 문장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동안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다 덜컥 겁을 먹고 뒤돌아섰던 수많은 날들의 핑계들이 낱낱이 흩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낯선 도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출발선에 설 때마다 우리의 발목을 가장 강하고 집요하게 붙잡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해야 하는 뼈아픈 현실이죠.
남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매끄럽게 달려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아무런 재능도 기술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며 우스꽝스러운 꼴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공포가 밀려오곤 합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근사하고 완벽한 결과물을 상상하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서 서투른 첫발을 내디뎌 보면 내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역시 나는 재능의 씨앗조차 없나 봐', '애초에 내 그릇으로는 무리였어'라며 시작과 동시에 지레짐작으로 셔터를 닫아버린 경험, 아마 다들 마음속에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실 겁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훌륭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시작하는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미 완벽한 재능과 능력이 내 안에 완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단단히 착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마주한 이 따뜻하고도 묵직한 명언은, 능력이란 결코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필수 입장권이 아니라 굳건한 믿음을 품고 묵묵히 걷는 자에게 훗날 주어지는 아름다운 훈장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넌지시, 그러나 아주 명확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두 발로 완벽하게 균형을 잡고 뛰어다니는 아기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수없이 바닥에 넘어지고 무릎을 찧으며 울음을 터뜨리지만, 아기들은 자신이 언젠가 어른들처럼 두 발로 당당하게 서서 걷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맹목적인 믿음과 실행 속에서 걷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지는 것이죠.
그런데 어른이 된 우리는 왜 그렇게 스스로의 잠재력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가혹한 현미경을 들이대며 의심부터 품게 된 걸까요. 아마도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당하는 것에 뼛속까지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나 스마트폰 하나만 켜면 전 세계 사람들의 가장 화려하고 성공적인 결과물들이 매일 폭우처럼 쏟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들이 피와 땀을 갈아 넣어 완성한 '제20장'의 찬란한 결말을 보면서, 이제 막 펜을 들고 엉성하게 쓰기 시작한 나의 '제1장'을 비교하며 턱없이 부족하다며 자학을 하는 셈입니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날것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수치스러워하다 보니, 아예 능력이 완벽해질 때까지 숨어서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슬픈 방어기제가 우리 뇌를 지배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능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하겠다는 말은, 수영을 완벽하게 할 줄 알게 되면 그때 물에 들어가겠다는 말처럼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지독한 모순입니다.
물에 직접 뛰어들어 코로 물을 들이마시고 발버둥 치며 허우적대는 뼈아픈 과정 없이는 평생 물에 뜨는 감각조차 몸으로 익힐 수 없는 것처럼, 능력이란 일단 무능하고 초라한 내 모습을 꾹 참고 세상에 드러내는 바로 그 뾰족한 지점에서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다'는 단순하고 투박한 믿음이 도대체 어떤 원리로 우리에게 실질적인 능력을 쥐여주게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결코 기도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식의 허황된 마법이나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온전히 믿어주는 마음은, 우리가 숱하게 마주하게 될 실패와 좌절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는 가장 강력하고 과학적인 심리적 무기입니다.
'어차피 나는 안 될 거야'라고 마음 밑바닥에 의심을 깔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번의 사소한 실패를 마주했을 때조차 그것을 '역시 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뼈아픈 증거로 덥석 받아들이고 영원히 주저앉아 버리고 맙니다.
반면에 '시간이 걸려도 나는 결국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굳게 믿는 사람은 똑같은 처참한 실패 앞에서도 그것을 단지 최종 목적지로 가는 길에 밟고 지나가야 할 징검다리 정도로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접근하는 방식이 살짝 틀렸을 뿐이야, 다음번엔 궤도를 수정해서 다르게 부딪혀보자'라며 담담하게 오답 노트를 적어 내려갈 수 있는 놀라운 회복 탄력성은 오직 스스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에서만 뿜어져 나옵니다.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수백 번의 시행착오와 오답을 끝끝내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동력이 바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그 눈물겨운 끈기의 끝에 필연적으로 얻게 되는 묵직한 결과물이 바로 '할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구간은, 바로 내 눈높이와 실제 내 실력 사이의 거대한 격차를 뼈저리게 느껴야만 하는 초창기의 캄캄한 시간들입니다.
처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내 안목은 이미 미술관의 명작들을 알아볼 만큼 훌쩍 높아져 있는데, 정작 내 손끝에서 덜덜 떨며 나오는 선은 삐뚤빼뚤 유치원생의 낙서 같아서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밀려오곤 하잖아요.
새로운 외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도 머릿속으로는 원어민처럼 유창하고 세련된 문장이 맴도는데, 막상 입 밖으로는 더듬거리는 엉터리 단어만 우스꽝스럽게 튀어나올 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끔찍할 만큼 초라하고 엉성한 나의 민낯을 비겁하게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견뎌내는 단단한 용기가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합니다.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 자신을 자책의 채찍으로 때리는 대신, 오히려 너그럽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처음이니까 당연히 못하는 게 정상이지'라며 스스로에게 마음껏 서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아낌없이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처음의 보잘것없는 능력을 부끄러워하며 꽁꽁 숨기려 들거나 빨리 건너뛰려고 편법을 찾지 말고, 기꺼이 엉망진창으로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며 그 찌질하고 서투른 시간들을 온몸으로 정직하게 통과해 내야만 합니다.
단단한 땅은 비 온 뒤에 굳어지듯, 우리의 능력 역시 그 숱한 부끄러움의 시간들을 묵묵히 버텨낸 굳은살 위에서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프레임을 조금만 더 멀리 돌려보면 우리의 좁고 답답했던 시야가 한결 넓고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일을 굳게 마음먹고 시작하면 한 달, 길어야 석 달 안에 남들이 알아볼 만한 눈부신 성과가 뚝딱 나타나기를 조급하게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내겐 이 분야의 재능이 전혀 없다며 성급한 판결의 망치를 두드리고는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도망쳐 버리죠. 하지만 세상의 진짜 단단하고 가치 있는 능력들은 결코 편의점의 인스턴트식품처럼 끓는 물을 붓고 3분 만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 매진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인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의 시작점 역시,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실수투성이에 무능하고 평범한 초보자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엄청난 능력자들이 초보 시절에 우리와 달랐던 단 하나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재능이나 성과가 없는 그 막막하고 캄캄한 긴 터널 속에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내 안의 빛을 세상에 꺼내어 보여줄 것'이라는 묵직하고 집요한 믿음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당장 오늘 당신의 눈앞에 뚜렷한 결과물이 만져지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의 노력이 허공으로 증발해 버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겨울의 언 땅 밑에서 씨앗이 봄을 기다리며 보이지 않게 뿌리를 뻗어나가듯,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당신의 능력이 맹렬하게 잔뿌리를 내리며 치열하게 자라나고 있음을 스스로 굳게 믿어주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의 능력은 결코 세상 밖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 주지 않는 법이니까요.
이 위대한 믿음의 법칙은 단순히 새로운 취미나 업무 스킬 같은 기능적인 것을 배우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을 무자비하게 덮쳐오는 수많은 위기와 고난을 버티고 극복해 내는 인생의 태도에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거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경제적, 육체적 위기가 닥쳐왔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과연 이 끔찍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며 깊고 어두운 절망의 늪에 속절없이 빠져들곤 합니다.
당장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내일을 어떻게든 버텨낼 아주 작은 마음의 근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공허하게 느껴지죠.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져 당장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조차 불가능한 무능력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숨 막히도록 캄캄한 절망과 무능력의 한가운데서도 '나는 결국 이 지독한 시간을 통과해 내고 다시 웃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작은 촛불 같은 믿음 하나만은 당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절대 꺼지지 않게 켜두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장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일지라도,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버텨내며 살아남겠다는 그 절박한 믿음 하나로 오늘을 맞이하다 보면 어느새 당신 안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시련의 상처를 훌훌 털어내고, 이전보다 훨씬 더 넓은 마음의 품과 단단한 맷집을 가지게 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결국 삶의 거대한 폭풍우를 견뎌내는 진정한 능력 역시, 내가 이 비바람을 끝끝내 이겨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강인한 신뢰에서부터 조용히 잉태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가슴 깊이 간절히 원하면서도, 당장 내 손에 쥐어진 것이 없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냉혹한 현실 때문에 그저 주저앉아 눈물짓고 계신 분이 있나요.
내 안에는 어떤 특별한 잠재력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톡톡 튀는 눈부신 재능도 전혀 없는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먼지처럼 초라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부디 오늘부터는 나의 '현재 능력치'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그 가혹하고 차가운 세상의 잣대를 과감하게 무릎으로 꺾어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조차 나를 믿어주지 않는데 세상 그 어떤 누가 당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알아보고 응원해 주겠습니까.
당신에게 정말로,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박수를 끌어낼 만한 이미 완성된 완벽한 능력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비록 그 실체가 보잘것없고 투박하더라도, 기어이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멋지게 해내고야 말겠다는 당신 스스로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과 무식할 정도로 굳센 믿음 하나, 오직 그것뿐입니다.
믿음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자석이 되어 흩어져 있던 당신의 잠재력과 행동력, 그리고 끈기를 한 곳으로 맹렬하게 끌어당겨 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