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힘들었던 직장 근처만 가도 저도 모르게 몸부터 긴장됩니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상사 때문에 꽤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일을 못해서 혼나는 정도였다면 저도 어느 정도 받아들였을 텐데, 그때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필요 이상으로 몰아붙이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면박을 주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별것 아닌 일을 가지고 한참 이야기하거나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일단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출근하는 것 자체가 싫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불려갈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고, 회사에 도착하기 전부터 괜히 긴장됐습니다. 상사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무슨 잘못을 했는지부터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그 사람을 볼 일도 없고 그곳에 출근할 이유도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평소에는 그때 일을 거의 생각하지 않고 지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전 직장이 있던 동네 근처를 지나갈 일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몸부터 긴장된다는 겁니다.

 

일부러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볼일 때문에 근처를 지나가는 것뿐인데도 그렇습니다. 익숙한 건물이 보이고 예전에 출퇴근할 때 걷던 길이 눈에 들어오면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납니다. 머리로는 이제 아무 상관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몸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주변을 살피게 됩니다. 혹시 예전 직장 사람과 마주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실제로 마주친 적은 거의 없는데도 그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특히 예전에 출근하면서 자주 지나갔던 길을 보면 당시 아침에 느꼈던 긴장감이 같이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그때 어떤 말을 들었는지 하나하나 생각나는 것은 아닌데 그 시절에 느꼈던 불편함은 이상할 정도로 금방 돌아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길로 가면 조금 돌아가야 하는데도 굳이 우회한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나면 내가 왜 아직도 이러나 싶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일이고 지금은 그 사람과 아무 관계도 없는데 장소 하나 때문에 이 정도로 신경 쓰는 게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너무 예민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맞지 않는 상사를 만날 수도 있고 힘든 일을 겪는 사람도 많을 텐데 왜 저는 지나간 일을 아직까지 이렇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일부러 당시 일을 계속 떠올리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하게 그 근처를 지나가거나 비슷한 분위기의 장소를 보면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이 강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만 들어도 예전 상사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순간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상황이 끝난 뒤에야 내가 왜 이렇게 신경을 썼지 싶어요.

 

머리로는 과거의 일이라고 알고 있는데 몸은 아직 그때와 지금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PTSD라는 말을 쉽게 붙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겪는 정도가 거기에 해당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다만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과 관련된 장소를 다시 접했을 때 긴장부터 되는 일이 반복되니까 비슷한 경험을 하는 분들은 어떤지 궁금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장소도 그냥 평범한 곳으로 느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남아 있네요. 그렇다고 계속 피하기만 하면 오히려 더 의식하게 될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됩니다.

 

예전에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힘든 일을 겪은 뒤 그 일이 있었던 장소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 당시의 긴장감이 다시 올라왔던 분들이 계신가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괜찮아졌는지, 아니면 이런 반응이 계속돼 따로 도움을 받아보신 분도 있는지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댓글10
  • 익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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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는 내내 당시 얼마나 숨이 막히고 힘드셨을지 느껴져 마음이 참 아픕니다. 먼저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성자님이 결코 예민하거나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몸과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에 큰 상처를 입었던 장소나 상황을 기억해 두었다가, 비슷한 자극이 오면 "위험해!" 하고 경고등을 켜며 몸을 긴장시킵니다. 
    
    머리로는 끝난 일인 걸 알아도 몸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그동안 그 힘든 기억을 묻어두고 버텨내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스로를 탓하며 괴롭히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익명2
    BEST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남 일 같지 않아 댓글 남깁니다. 저 역시 예전 직장 근처 지하철역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멀리 돌아가곤 했습니다. 억지로 그 장소에 가며 적응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당분간은 마음 편히 우회 도로를 이용하며 내 마음의 안전거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강한 말투로 이야기할 때도 긴장될 만큼 일상에 지장이 가기 시작했다면 혼자 참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는 걸 권해드려요. EMDR이나 인지행동치료 같은 기법들이 몸에 박힌 긴장감을 풀어주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힘내세요, 작성자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 익명5
    예전에 힘들었던 직장 근처만 가도 저도 모르게 몸부터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네요.
    예전에 다니시던 직장에서 크게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면, 그 장소나 주변 풍경이 당시의 불안과 연결되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답답해지고 괜히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지는 것은 
     “아직도 내가 그 일을 못 이겨냈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몸이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나 힘든시간이었을지 상상하지 못하는 몸과 마음의 방어기제가 작용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그 장소에 가게 되었을 때는 억지로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지금 나는 그때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
    그 일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 내 몸이 놀란 것뿐이다.
    나는 지금 안전하다.”
    긴장을 없애려고 하기보다 “긴장해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허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나는 무서웠지만 지나왔다.”
    “긴장했다고 해서 내가 약한 것은 아니다.”
    “내 몸이 나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로 그때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장소를 빨리 벗어나려고만 하지 말고, 안전한 범위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자신에게 숨쉬는 시간적 편안함을 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장소에 갈 때마다 긴장이 생긴다고 해서 내가 과거에 계속 붙잡혀 있다는 뜻은 아닐뿐더러 
    마음은 지나갔어도 몸의 경보 시스템이 아직 조금 예민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반복해서 안전한 경험을 쌓으면서 마음과  몸이 조금씩 “여기는 이제 위험하지 않구나” 하고 다시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히다고 생각하네요.
    
    익명3
    작성자
    유사한 경험담을 나눠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역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셨다니 당시 얼마나 힘드셨을지 공감이 가네요. 무작정 이겨내려고 하기보다 '마음의 안전거리'를 두고 우회하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는 말씀에 안도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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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머리로는 끝난 일인데 몸이 먼저 그때로 돌아가는 느낌”**이 참 잘 느껴졌습니다. 이건 스스로 예민해서 생긴 반응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복적으로 혼나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하고, 언제 불려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지내다 보면 뇌와 몸이 그 장소·길·말투 같은 단서와 당시의 긴장감을 연결해서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안전한 장소라는 걸 알아도 비슷한 자극을 만나면 몸이 먼저 경계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기억은 사라졌는데 몸의 경보장치는 아직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셈이지요.
    
    특히 그곳을 피하면 당장은 편안해지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장소=위험한 곳’이라는 연결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 길을 다니며 견딜 필요도 없습니다. 충분히 안정된 상태에서 짧게 지나가 보면서 *“지금 나는 그 직장이 아니라 현재에 있고, 이제 그 사람의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이 계속 심해져서 장소나 말투를 광범위하게 피하게 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불안·긴장이 반복된다면 상담이나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보셔도 좋겠습니다. 꼭 PTSD라는 진단을 붙여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글쓴님이 겪었던 일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작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반복적으로 사람 앞에서 위축되고 두려워지게 만드는 경험은 분명 마음과 몸에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미 그 직장을 떠났고, 그 상사와의 관계도 끝났습니다.
    이제는 몸에게도 그 사실을 천천히 알려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는 많이 긴장하고 무서웠지만, 지금의 나는 그곳을 떠났고 이제 안전하다.”
    그 말을 서두르지 않고 여러 번 들려주세요.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몸이 현재를 다시 배워가는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요. 
    익명3
    작성자
    역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셨다니 당시 얼마나 힘드셨을지 공감이 가네요. 무작정 이겨내려고 하기보다 '마음의 안전거리'를 두고 우회하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는 말씀에 안도감이 듭니다.
  • 익명4
    예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로 넘기기에는 당시 많이 긴장하고 버티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장소나 말투 같은 작은 단서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바로 괜찮아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일부러 무리해서 그 장소를 피하거나 반대로 억지로 견디기보다는, 지금 내가 안전하다는 걸 조금씩 경험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반응 때문에 일상에서 계속 피하게 되거나 불편함이 커진다면 상담을 통해 당시 경험을 천천히 정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익명3
    작성자
    인지행동치료 같은 구체적인 기법들도 한번 진지하게 알아보고 전문가의 도움을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