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도 인생의 한 과정이라는 말

“지금은 그 질문을 살아가세요. 

어쩌면 먼 훗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답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1903년 7월 16일 자 편지 중

 

답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도 인생의 한 과정이라는 말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사용하던 수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오래전에 적어놓은 메모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페이지가 유독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당시 고민했던 일들이 짧은 문장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지금 하고 있는 선택이 맞는지, 몇 년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같은 질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분명 그때는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들인데 지금은 그런 고민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거든요.

그중에는 이미 해결된 문제도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문제도 있었습니다.

어떤 질문은 지금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예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의 답을 찾아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질문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하는구나.

오늘 소개하고 싶은 릴케의 명언도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햇살 가득한 창가의 빈 수첩과 만년필

 

모든 질문에 당장 답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답이 없는 상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고민이 생기면 가능한 한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죠.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지, 지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 같은 문제들이 대표적입니다.

사소한 일이라면 몰라도 인생에 영향을 미칠 만한 문제는 쉽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꾸 확실한 답을 요구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면서도 지금 내린 결정이 반드시 옳기를 바라죠.

그럴 때마다 확신이 없는 자신을 답답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릴케는 1903년 젊은 시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인내심 있게 대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라고 이야기했죠.

저는 이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질문에는 반드시 좋은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지금 당장 답할 수 없는 질문도 분명 존재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이 쌓여야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알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일은 아닐 겁니다.

 

노을 아래 여러 굽이를 지나 멀리 이어지는 길

 

 

예전의 고민이 지금은 별것 아닌 일이 된 이유

돌이켜 보면 20대에 중요했던 문제와 30대에 중요했던 문제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때는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목표가 지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당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일들이 나이가 들면서 훨씬 중요해지기도 하죠.

그렇다고 예전의 생각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일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공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생활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겠죠.

이런 변화들은 책 한 권을 읽거나 누군가의 조언을 듣는다고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닐 겁니다.

여러 경험이 쌓이고, 좋은 일도 겪고, 실망스러운 순간도 지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는 것이겠죠.

어쩌면 우리가 찾아 헤매던 답은 특별한 깨달음의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해답보다 작은 경험 하나가 더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꾸준히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시간과 비용도 필요했고 시작했다가 금방 그만두면 괜히 낭비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기만 했습니다.

관련 글도 읽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보를 모아도 한 가지 질문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할까.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은 실제로 경험해 보기 전에는 답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결국 작은 규모로 한번 시도해 봤습니다.

막상 해보니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기대만큼 흥미롭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경험 이후로 더 이상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직접 해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모든 문제를 무조건 행동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일도 있고 잘못된 결정이 큰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고민했음에도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라면 때로는 작은 경험을 통해 알아가는 방법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색의 종이로 조금씩 이어 붙인 작은 다리

 

기다리는 시간도 삶의 일부입니다.

요즘은 무엇이든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검색하고, 필요한 정보도 몇 초면 찾아볼 수 있죠.

그러다 보니 우리의 마음속 문제까지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나 삶의 방향에 관한 고민은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한다고 명확한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자신의 삶에 어떤 선택이 맞는지는 스스로 알아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죠.

저는 예전에는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면 그 시간이 낭비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고민했던 일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선택지가 새롭게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물론 기다림과 회피는 구분해야 합니다.

결정해야 할 일을 두려워서 계속 미루는 것은 결국 더 큰 어려움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를 무리하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일 수 있겠죠.

 

넓은 창가에 놓인 청록색 안락의자와 책, 따뜻한 실내

 

어쩌면 인생에는 정답보다 질문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문제를 풀고 정답을 찾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문제를 읽고 답을 고르면 점수를 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정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결과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몇 년 전의 자신에게 옳았던 선택이 지금의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모든 순간에 완벽한 답을 내리는 능력만은 아닐 것입니다.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면서 필요할 때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태도 역시 중요하겠죠.

릴케의 명언은 그래서 단순한 위로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조언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질문을 지금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일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답을 모른다고 해서 지금 살아가는 하루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오늘의 나에게 아직 답이 없어도 괜찮겠습니다.

수첩을 다시 덮으면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의 제가 지금의 저를 만난다면 그때 적어놓은 질문들을 꺼내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질문들에 모두 명확하게 대답할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그렇게 걱정했던 일들 중 상당수는 생각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도 많이 생겼다고 말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오늘 제가 고민하는 문제 가운데 어떤 것은 몇 년 뒤에도 여전히 중요할 겁니다.

반면 어떤 것은 아예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모든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답안지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살아가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을빛을 향해 열린 문 앞 운동화와 여행 가방

 

오늘은 릴케의 명언을 마음에 담아두려고 합니다.

당장 답을 모르는 일 때문에 지금의 하루까지 불안하게 보내지는 않으려고요.

몇 년 뒤에는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일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에게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하나쯤 있으신가요?

그리고 예전에는 무척 고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던 일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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