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적어놓고도 정작 다른 것부터 하고 있어요..

해야 할 일을 자꾸 잊는 것 같아서 요즘은 생각나는 대로 적어두려고 합니다. 오늘 해야 할 것들을 눈에 보이게 정리해두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적어놓고 나면 이상하게 그 순서대로 하지 않습니다.

 

분명 중요한 일이 뭔지 알고 있고 먼저 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시작하려고 하면 갑자기 다른 일이 눈에 들어옵니다. 별로 급하지 않은 걸 먼저 확인하기도 하고, 잠깐 휴대폰을 봤다가 생각보다 오래 보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할 일 적어둔 게 생각나서 보면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안 했더라고요. 해야 할 일을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게 제일 답답합니다.

 

아침에는 오늘은 이것부터 하고 그다음에는 저걸 해야겠다고 나름대로 순서까지 정해놓습니다. 그때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도 계산해보면 넉넉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계획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갑니다.

 

특히 조금 귀찮거나 집중해야 하는 일은 계속 뒤로 밀리는 것 같습니다. 그걸 먼저 끝내면 마음이 편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 쉬운 것부터 손이 갑니다. 금방 끝낼 수 있는 일을 하나 처리하면 그래도 뭔가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몇 개를 끝내놓고 시간을 보면 생각보다 많이 지나 있습니다. 그제야 원래 먼저 해야 했던 게 생각나고 마음이 급해집니다. 처음부터 그것만 했으면 이미 끝났을 텐데 왜 또 이러고 있나 싶어요.

 

할 일 목록을 만들어두는 방법이 저한테는 잘 안 맞는 건가 싶어서 더 자세하게 적어본 적도 있습니다. 큰 일을 한 번에 하려고 해서 부담스러운 건가 싶어 작게 나눠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계획을 만드는 순간에는 굉장히 그럴듯한데 행동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흐트러집니다.

 

오히려 목록을 자세히 만들어놓고 나면 그것만으로 조금 안심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정리했으니 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정작 중요한 건 적는 게 아니라 하나씩 하는 건데 말이에요.

 

할 일이 여러 개 있는 날에는 더 심합니다. 어느 것부터 할지 이미 순서를 정해놨는데도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첫 번째 것을 시작하기보다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있어요.

 

중간에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원래 하던 걸 잠깐 멈추고 다른 걸 확인했다가 그대로 넘어가 버립니다. 한참 뒤에야 아까 하던 게 있었지 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다 보면 시작해놓고 끝내지 않은 것들만 남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면 그냥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데 계속 반복되니까 신경이 쓰입니다. 저도 ADHD라고 단정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ADHD가 있는 분들이 실행이나 우선순위를 정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실제로는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졌어요.

 

가끔은 제가 그냥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항상 바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해서 신경 쓰이는 일조차 계속 미루는 걸 보면 저도 제 행동을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하루가 거의 끝났을 때 할 일 목록을 다시 보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분명 바쁘게 이것저것 했는데 정작 오늘 꼭 해야 한다고 적어둔 것만 그대로 남아 있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일 해야 할 일이 또 늘어나고, 다음 날에는 시작하기가 더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렇다고 계획 없이 지내면 아예 잊어버릴 것 같아서 적는 걸 그만둘 수도 없네요. 목록을 만들어도 안 되고 안 만들기도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ADHD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할 일을 적어놓은 다음 실제로 시작하는 데까지 어떻게 연결하시나요. 중요한 일보다 사소한 일을 먼저 하게 되는 것도 흔한 편인지 궁금합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훨씬 어려운 분들이 계시다면 어떤 방식이 그나마 도움이 됐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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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ADHD를 주제로 8천명이 이야기 중

댓글4
  • 익명1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 미루는 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어요. ADHD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시작하고 끝내는 것 사이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모습만으로 ADHD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요.
    목록을 자세하게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오늘 가장 중요한 일 하나만 정해서 바로 시작하는 방식을 먼저 해볼 것 같아요. 
    공부하기가 아니라 책상에 앉아 책 펼치기처럼 시작 행동을 아주 작게 잡고, 휴대폰처럼 자꾸 새 행동을 끌어들이는 건 잠시 치워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고요. 
    반복적으로 일상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면 혼자 의지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전문가에게 ADHD 여부를 한번 평가받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익명2
    작성자
    제안해 주신 '시작 행동을 아주 작게 잡는 방법'이 정말 와닿네요. 그동안은 '공부하기', '보고서 쓰기'처럼 행동의 덩어리를 너무 크게 생각해서 뇌가 부담을 느끼고 딴짓으로 도망쳤던 것 같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목록을 길게 채우기보다, 딱 하나만 정해서 '책상에 앉아 책 펼치기' 같은 초소형 행동부터 연습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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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작성자님 글을 읽으니 ‘해야 할 일을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데도 다른 일을 먼저 하게 되는 답답함’이 느껴져요.
    
    어쩌면 먼저 손이 가는 일을 먼저 처리하면서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쉽고 금방 끝나는 일을 하나 해놓으면 ‘그래도 하나는 했다’는 안도감이 생기니까요.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하고 부담스러운 일은 계속 뒤로 밀리고요.
    
    그래서 할 일 목록을 더 촘촘하게 만드는 것보다, 그날 꼭 해야 할 것 딱 하나만 정해서 그것부터 5분만 시작해보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아요. 끝내려고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거죠.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고 해서 바로 ADHD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피로, 스트레스, 습관, 부담감 때문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나는 왜 이것도 못 하지’라고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계획은 잘 세우는데 실행에서 자꾸 막히는 것도 분명 힘든 일이니까요.
    
    작성자님에게 필요한 건 더 완벽한 계획표가 아니라, 계획과 행동 사이의 작은 연결고리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익명2
    작성자
    생각해 보니 사소한 일을 먼저 건드렸던 건, 중요한 일이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나 뭐라도 했다'는 가짜 안도감을 얻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핵심을 짚어주셔서 제 행동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