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설명을 한꺼번에 들으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설명하면 처음에는 잘 알아듣는 것 같은데, 막상 혼자 해보려고 하면 순서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설명을 들을 당시에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하나씩 떠올려보면 중간에 빠진 내용이 생깁니다. 그래서 요즘은 누가 길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하게 됩니다.

 

가장 난처한 건 상대방이 설명하는 동안에는 제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중간에 물어보는 말에도 대답합니다. 그런데 설명이 끝나고 나면 앞에서 들었던 내용과 뒤에서 들었던 내용이 뒤섞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설명받을 때 처음에는 순서대로 따라갑니다. 먼저 이것을 확인하고, 다음에는 저것을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다른 부분을 살펴보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설명이 길어질수록 앞에서 무엇을 먼저 하라고 했는지 기억이 흐려집니다.

 

내용 하나하나는 어려운 게 아닌데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놓치지 않으려고 더 집중해서 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들은 내용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동안 상대방은 이미 다음 설명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새로 들은 내용을 이해하느라 처음 이야기를 놓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중간에 다시 물어봐야 하는데 그것도 매번 쉽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은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저 역시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묻는 게 괜히 미안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질문 없이 이해한 것 같은데 저만 다시 물어보려니 망설여집니다. 결국 대충 알겠다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혼자 다시 확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설명을 듣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이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 들을 때는 분명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순서를 떠올리려니 어느 부분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겁니다. 그때는 설명을 다시 처음부터 들으면 알 것 같았지만 이미 지나간 내용을 혼자 되짚으려니 답답하더군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요즘은 긴 설명을 듣는 것 자체가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상대방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면 일단 중요한 것부터 기억하려고 하는데,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동안에도 다른 내용이 계속 들어옵니다.

 

집중을 더 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억하려고 애쓸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도 있습니다.

 

한 가지씩 차례대로 설명을 들으면 그나마 낫습니다. 직접 해보면서 다음 순서를 알려주면 이해하기도 쉽고 기억에도 조금 더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여러 가지를 연달아 들으면 나중에 정확하게 떠올리기가 어렵습니다.

 

가끔은 제가 이해력이 부족해진 건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설명을 다시 천천히 들으면 처음에는 헷갈렸던 내용이 어렵지 않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의 문제인지, 여러 정보를 동시에 기억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어려운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메모를 해보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서 적으려니 이번에는 글을 쓰는 동안 다음 이야기를 놓칠까 봐 신경이 쓰입니다. 그렇다고 설명이 끝난 뒤에 적으려고 하면 앞부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네요.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다만 단순히 오래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방금 들은 설명인데도 여러 내용이 겹치면 순서가 뒤바뀌거나 일부가 빠진다는 점이 신경 쓰입니다.

 

ADHD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보니 작업기억이나 주의력 조절 때문에 여러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제 경우가 ADHD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로나 다른 이유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분명히 집중해서 들었는데 나중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스스로도 답답하고 자신감이 줄어듭니다. 상대방에게 다시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러다 보면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설명을 들을 때는 알겠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혼자 해보면서 헷갈리는 상황이 가장 곤란합니다.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서 질문이라도 할 텐데, 당시에는 이해했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다시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여러 가지 설명을 한꺼번에 들을 때 어떠신가요? 한 가지씩 들으면 괜찮은데 내용이 많아지는 순간 앞에서 들었던 것을 놓치거나 순서가 뒤섞이는 경험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상대방이 빠르게 설명할 때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메모를 하거나 설명을 나누어 듣는 방법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의 경험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hub-link

지금 ADHD를 주제로 8.2천명이 이야기 중

댓글4
  • 익명1
    BEST
    글을 읽는 내내 제 이야기를 써놓으신 줄 알았습니다. 저도 들을 때는 열심히 고개 끄덕이고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하려고 보면 '어라? 첫 단계가 뭐였지?' 하면서 머릿속이 하얘지거든요. 적으면서 들으려니 적는 동안 다음 말이 안 들린다는 부분도 완전 제 일상이에요.
    
    이건 절대 작성자님의 이해력 문제가 아니에요! 한 번에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작업기억의 용량을 넘어서 과부하가 걸린 것뿐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럴 때 상대방에게 "제가 순서를 자꾸 헷갈려 해서 그런데, 핵심 단어만 받아 적으면서 들어도 될까요?" 하고 미리 양해를 구해요. 문장을 다 적지 않고 '1. 확인 -> 2. 처리 -> 3. 발송' 같은 식으로 키워드만 툭툭 적는 거죠. 아니면 아예 "말씀해 주신 순서가 [A하고 B하는 것]이 맞나요?" 하고 대화 마지막에 제가 이해한 순서를 상대방에게 말로 확인받는 방법을 씁니다. 작성자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 익명2
    BEST
    집중해서 들으려고 애쓰는데도 막상 혼자 시작하려 할 때 순서가 뒤섞이면 스스로에게 참 답답하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셨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안 들린 게 아니라 들을 당시에는 이해가 가니까 중간에 끊고 다시 물어보기도 참 애매하셨을 텐데, 그 곤란함이 글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신 대로 여러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하고 순서를 조절하는 '작업기억'이나 '주의력 조절'의 특성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의지나 성실함의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뜻이지요.
    
    긴 설명을 들을 때는 상대방의 속도를 억지로 따라가며 다 기억하려 하기보다, 대화 중간에 "잠시만요, 여기까지가 1단계인 거죠?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고 대화에 인위적인 '쉼표'를 만들어 정보를 쪼개어 받아들이는 연습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매번 다시 묻는 게 미안하게 느껴지겠지만, 나중에 혼자 헤매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서로에게 훨씬 이득입니다.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마시고, 내 뇌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페이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ADHD 인기글

ADHD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