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중간 내용이 자꾸 빠집니다

요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상대방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있고 처음에는 내용도 잘 따라가는데,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상대방 이야기는 이미 한참 진행되어 있어요.

 

아예 딴짓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대방 이야기가 재미없어서 일부러 흘려들은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야기 중에 어떤 단어나 내용 하나를 듣고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생각이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오늘 어디를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잘 듣고 있다가 장소 이름 하나 때문에 예전에 제가 봤던 것이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러면 거기서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잠깐 그러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이야기에 집중했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연결이 안 됩니다.

그 순간이 참 난처하네요.

 

다시 물어보자니 조금 전까지 열심히 듣는 것처럼 있었는데 내용을 놓쳤다는 게 미안하고, 그렇다고 알아들은 척하고 넘어가면 뒤에 나오는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제 의견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순간적으로 당황할 때도 있어요.

 

제가 일부러 상대방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게 아닌데 생각이 잠깐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는 점이 가장 답답합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대화하다 보면 잠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저도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니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길어지면 앞부분보다 중간 이후에 놓치는 일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집중해서 듣다가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상대방 말에 집중하려고 하면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또 지금 하는 이야기를 놓칠 때도 있고요.

 

한번 놓치면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꼭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상대방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는 게 아니라 제가 제대로 듣고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대화 자체가 전보다 피곤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상대방이 전에 이야기했던 내용을 나중에 다시 꺼냈는데 제가 처음 듣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어요. 상대방은 분명 전에 말했다고 하는데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는 겁니다. 

 

그럴 때는 제가 그때 아예 듣지 않았던 건지, 들었지만 기억에 남지 않은 건지 모르겠네요.

 

대화뿐만 아니라 무언가 설명을 들을 때도 비슷합니다. 설명이 길어지면 처음 내용은 기억하는데 중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마지막 부분을 들으면서 앞뒤를 맞춰보려고 하는데 잘 연결되지 않으면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집중을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잘 듣기도 하고 제가 관심 있는 것을 할 때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기도 해요. 그래서 단순히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합니다.

 

요즘은 대화할 때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이어가지 말고 다시 상대방 말로 돌아오려고 해봅니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게 지금은 하지 말아야지 한다고 바로 없어지는 건 아니더군요. 

 

오히려 방금 무슨 생각을 했지 하고 신경을 쓰다가 또 내용을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ADHD에 관한 글을 보다 보면 대화를 듣다가 생각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 내용을 놓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모습만 가지고 제가 ADHD라고 스스로 판단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서 집중하는 방식이 달라진 건지, 원래 있던 습관을 이제야 의식하게 된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 것으로 보일까 봐 그게 신경 쓰입니다. 저는 분명 제대로 듣고 싶고 내용도 기억하고 싶은데 제 생각이 먼저 다른 곳으로 가버릴 때가 있으니까요.

 

저처럼 대화를 시작할 때는 잘 듣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이 떠올라 중간 내용을 통째로 놓치는 일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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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 익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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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 하나에 촉발되어 연쇄적으로 생각이 뻗어나가 대화의 흐름을 놓치는 현상은 성인 ADHD나 주의력 저하를 겪는 분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관심 있는 분야에는 과몰입하지만 길고 지루한 청각적 설명에는 주의력이 쉽게 흩어지는 것도 뇌의 도파민 체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하면 뇌가 딴짓을 하기 쉽습니다. 상대가 한 문장을 말하면 "아, 그러니까 거기를 다녀왔다는 거지?" 하는 식으로 상대의 핵심 단어를 입 밖으로 짧게 맞장구치며 따라가 보세요. 내가 말을 해야 하므로 뇌가 다른 생각으로 도망갈 틈이 줄어듭니다.
    
    생각을 안 하려고 애쓰는 것은 오작동을 키우니, 주의가 딴 데로 가면 '아, 내 마음이 또 여행을 갔다 왔네' 하고 담담하게 다시 대화로 의식을 끌고 오면 됩니다.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실 거예요.
  • 익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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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데, 상대가 뱉은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주까지 가버리는 경험을 저도 정말 자주 하거든요. 정신 차려보면 이미 대화는 저 멀리 가 있고, 알아들은 척 고개는 흔들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이 흐르던 순간들이 참 난처하고 미안하죠
    
    작성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건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거나 성의가 없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뇌의 연상 작용과 호기심이 남들보다 너무 활발해서 청각적 자극을 처리하는 도중 자기도 모르게 다른 스위치가 켜지는 것뿐이에요. '제대로 들어야지' 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신을 또 감시하느라 뇌 에너지를 이중으로 쓰고 계시니 얼마나 피곤하시겠어요.
    
    스스로 ADHD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지만, 이런 주의력 흐름 때문에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으신다면 주의 집중을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의 특성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빠서가 아니라 내 뇌의 브레이크가 잠시 느슨했구나' 하고 자책감을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대화에 진심이신 분이니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 익명1
    안녕하세요~^^ 대화에 진심으로 집중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생각이 뻗어나갈 때의 미안함과 답답함에 깊이 공감하네요 ㅎㅎ 
    상대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단어나 문장이 연쇄적인 생각을 불러일으켜 
    뇌가 잠시 다른 길로 새어버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자책하기보다는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놓쳤는데 다시 말해줄 수 있어?"라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며 대화의 흐름을 다시 잡아가시는 방법을 추천해 드립니다ㅎㅎ
    익명4
    작성자
    대화에 진심인 마음과 그렇지 못한 제 행동 사이에서 오는 답답함을 알아주셔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어떤 문장에 뇌가 잠시 다른 길로 새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는 위로도 감사해요. 지금까지는 놓쳤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알아들은 척 숨기느라 진땀을 뺐는데, 앞으로는 차라리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놓쳤는데 다시 한번만 말해줄 수 있어?"라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해보는 용기를 내봐야겠습니다. 그게 대화의 흐름을 다시 잡는 데 훨씬 건강한 방법이 될 것 같네요. 친절한 조언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