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라온소피

임상심리사(2급)

경력15년, 당신이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동행합니다

아동가족치료 전공, 1만 시간 이상의 상담 임상 경험을 가진 라온소피입니다. 대학 강의와 공저 집필로 다진 전문성으로, 유아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의 마음을 치유합니다. 자라온 환경과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현재의 갈등, 불안, 억눌린 정서를 깊이 다룹니다. 미술·모래놀이 등 맞춤형 매체 치료와 1만 시간의 내공으로 당신의 온전한 삶을 안전하게 돕겠습니다.

활동 분야

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관계·소통 가족·부부 연애·이별 직장·커리어 아동·청소년 트라우마·상실 자기이해·성장 일상관리·마음습관

활동 내역

활동 기간

53일

전체 답변 수

2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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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나무심리발달센터 부소장 13년
  • 제이어스 상담센터 소장(비대면상담) 3년
  • 명지대학교미래교육원상담과 강사 3년
  • 부모교육전문강사 10년

학력/자격

  • 한국산업인력공단 임상심리사(2급) 인증 완료
  • 미술심리치료 전문가
  • 모래놀이치료 1급
  • 놀이상담사 1급
  • 전문상담사 2급
  • 부모교육전문가 1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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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치에게 묻기

Q. 저는 number 강박을 가진 사람입니다!

A. 안녕하세요 라온소피입니다. 상담실에도 이러한 강박 행동이나 증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글씨를 쓸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지우기를 반복하거나 종이를 몇 번이고 바꾸기도 하고, 특정 음악의 특정 부분을 정해둔 횟수만큼 들어야만 안심하기도 하죠. 오염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하루에도 손을 수없이 씻어 피부가 온통 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밀려오는 거북함과 불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동을 반복해야 하는 그 상황 자체가 스스로를 정말 많이 괴롭히고 계신 것 같아요. 지금 겪고 계신 상황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머릿속에서 "한 번만 하면 허전하다", "무언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식의 불편한 느낌이나 불안이 올라오는 것을 강박사고라고 하고, 그 불안을 꺼뜨리기 위해 여러 번 카드를 찍거나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강박행동이라고 합니다. 강박의 원인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반응이나 불안을 다루는 마음의 통제 욕구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습니다. 중요한 건, 불안할 때 반복 행동을 해주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아, 이렇게 반복해야 안전하구나" 하고 잘못된 공식을 학습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반복 횟수가 늘어나고 타인의 행동에까지 그 기준을 대입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상담이나 치료 현장에서는 노출 및 반응 방지법이라는 인지행동치료를 주로 사용합니다.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상황(버스를 탈 때 카드를 한 번만 찍는 상황)에 자신을 조금씩 노출시키고, 그 뒤에 습관적으로 하던 반복 행동을 일부러 참아보는 연습입니다. 한 번만 찍었을 때 밀려오는 그 허전함과 불편함을 그대로 견뎌보면서, "내가 행동을 반복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불안도 자연스럽게 줄어드는구나" 하는 것을 직접 경험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드시겠지만, 혼자서 의지만으로 꾹 참으려고 하면 오히려 피로감만 커질 수 있습니다. 가까운 전문 상담 기관이나 병원을 찾으셔서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아주 작은 행동부터 하나씩 지연시키고 줄여나가는 연습을 시작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든지 체계적으로 다스려 나갈 수 있는 부분이니, 너무 낙담하지 마시고 마음의 짐을 조금씩 나누어 가시길 바랍니다. 혹시나 이러한 강박사고나 행동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반드시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자존감

Q. 내 감정을 잘 모르겠어요.

A. 상담실에는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거나 억눌러둔 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더 이상 조절되지 않아 마음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당연히 느끼고, 스스로 소유하며,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하는 우리만의 고유하고 건강한 영역입니다. 원래 감정은 마음속에서 피어올라 나에게 어떠한 신호를 주고, 그에 맞는 표현이나 행동을 거친 뒤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순환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것이 감정이 가진 순기능이지요. 하지만 어릴 적 살아남기 위해, 혹은 마음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계속 미뤄두고 무시하게 되면 이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역기능이 발생합니다. 사라지지 못하고 억압된 부정적인 감정들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다가, 결국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때 2~3시간씩 서운함이나 슬픔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 감정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은 몸의 감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슬프거나 불안할 때,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는 것은 우리의 신체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목이 턱 막히거나, 어깨가 짓눌리는 듯한 느낌, 혹은 손발이 차가워지는 생리적 감각들이 바로 감정이 보내는 첫 번째 신호입니다. 내 감정을 다시 찾아가는 첫걸음은 거창한 마음의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신체의 반응에 집중하는 연습에서 출발합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우울한가? 무기력한가?" 하고 머리로 분석하려 하기보다, 잠시 눈을 감고 지금 내 몸의 어디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지금 가슴 중앙이 돌덩이처럼 묵직하구나", "숨이 얕게 쉬어지고 목 안쪽이 따가운 것 같아" 하고 신체 감각을 있는 그대로 먼저 알아차려 주는 것이지요. 몸이 느끼는 감각을 가만히 바라보고 인정해 주다 보면, 굳어있던 마음의 경계가 풀리며 "아, 내가 지금 참 많이 슬프고 억울했구나", "내가 지쳐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구나" 하고 그 감각 뒤에 숨어있던 진짜 감정의 이름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동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아 주세요. 이제는 신체가 보내는 아주 작은 감각의 신호부터 하나씩 들어주면서, 잊고 지냈던 내 마음의 소리와 천천히 재회해 나가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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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친한 친구가 자꾸 제 사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요

A.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돌아왔을 때의 그 기분,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무조건 기분이 나쁘고 속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입을 떠난 순간부터 그 이야기는 전달하는 사람의 감정과 해석이 더해져 본래 내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되기 쉽거든요. 내가 직접 하지 않은 말이 타인의 입에서 들려올 때 느껴지는 그 불편함과 배신감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게다가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어디까지 말해야 하지?’ 하고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하게 된다면, 결국 대화의 온기도 사라지고 관계 역시 조금씩 시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신뢰에 균열이 생긴 관계에 대해 인간중심 치료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진실성(Congruence, 또는 일치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로저스가 말하는 진실성이란 내 속마음과 밖으로 표현하는 언어가 서로 일치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속으로는 서운함과 불신이 가득한데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진실하지 못한 상태이며, 이는 결국 스스로에게도 큰 스트레스가 되고 관계도 왜곡시킵니다. 친구와의 관계를 당장 끊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 진실성을 바탕으로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해 보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친구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관계를 계속 소중하게 이어가고 싶기 때문에’ 느끼는 솔직한 서운함과 불안을 들려주는 것이지요. 로저스의 관점에서 신뢰의 회복은 무작정 참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진실하게 표현했을 때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는지를 확인하는 것, 바로 그 지점까지가 우리가 관계를 회복해 볼 수 있는 시도이자 기준이 됩니다. 그러니 조금 용기를 내보시기 바랍니다. 별거 아닌 이야기지만 조금 신경쓰인다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해 보는 것을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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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 괜히 초라해졌습니다

A. 안녕하세요 라온소피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주식이 얼마 올랐느니, 집값이 얼마니, 해외여행은 어디로 다녀왔느니 하며 자랑을 늘어놓는데, 분명 같이 웃고 즐기다 돌아왔음에도 집으로 오는 길엔 왠지 허탈하고 기분이 참 나쁘더라고요. 그런데 돌아오면서 ‘나도 저 친구처럼 살면 정말 행복할까?’ 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봤습니다. 막상 생각해 보니 별로더라고요. 그 친구는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을 맞추며 사는 게 잘 맞는 친구였지만, 저는 그렇게 살다간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러면서 ‘집이나 재산, 주식 같은 걸로 굳이 나라는 사람을 포장하고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런 마음을 ‘열등감’과 ‘인생의 과제’라는 개념으로 풀어보곤 합니다. 아들러는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동기로 보았지요.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남의 삶의 기준을 그대로 내 삶에 가져와서 나를 평가할 때 일어나는 ‘열등감의 오용’입니다. 친구가 이룬 집이나 재산은 그 친구가 풀어가야 할 인생의 과제이자 그 친구에게 맞는 삶의 모양일 뿐입니다. 그걸 내 삶의 척도로 삼는 순간, 내 삶은 타인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사는 ‘타인의 인생’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들러는 ‘타인과의 경쟁’을 멈추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것에 집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남들이 이뤄낸 조건에 내 가치를 얽매이지 않고, 나에게 맞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 다시 내 안으로 시선을 돌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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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집을 나와 독립하고 싶은데 죄책감이 듭니다

A. 얼마 전 저의 딸아이가 독립을 했습니다. 처음 독립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서운하고 아쉽더라고요. 딸과 저는 성향도, 생각하는 것도, 취향도 비슷해서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처럼 잘 지냈거든요. 그런데 그런 딸을 독립시키려니 마음 한 구석이 휑하게 비는 것 같았습니다. 집을 보러 다니고 대출을 알아보고 하면서 너무너무 신나 하는 딸아이 곁에서, 같이 다니는 저는 서운함을 감추느라 좀 힘들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이렇다 보니, 독립을 준비하는 자녀 역시 부모님을 두고 떠나는 것에 마음이 약해지고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내 삶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신 것 같아요. 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는 이처럼 나와 상대방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태를 '융합(Confluence)'이라고 부릅니다. 서로 마음이 잘 통하고 깊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내 감정과 부모님의 감정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융합된 상태에서는 부모님의 외로움이나 서운함을 '부모님이 마땅히 느끼고 스스로 소화해야 할 삶의 과정'으로 보지 못하고, 마치 내가 부모님께 상처를 주고 가족을 버리는 것 같은 죄책감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독립은 가족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융합되었던 경계를 풀고 '건강한 거리'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지금 느끼는 미안함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독립된 개별체로 바라보기 위해 거치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성장통에 가깝습니다. 저도 지금은 딸아이의 독립을 대견해 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딸아이도 자주 집에 와서 쉬기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전과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독립'입니다. 건강한 독립이야 말로 서로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환경적 요소입니다. 용기를 내보세요.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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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또다른 불안장애일까요?

A. 질문자님이 얼마나 힘드실지 정말 걱정이 됩니다. 상담실은 정말 다양한 증상과 심리적 어려움을 갖고 오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불안과 관련된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불안이 베이스가 되어 우울이 동반되고, 강박과 건강염려가 동반되면서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많은 사례를 접하며 이분들의 공통적인 모습을 관찰하게 되는데요. 바로 뉴스에서 소개되는 사건·사고를 과잉 일반화한다는 점입니다. 제 내담자 한 분은 교통사고나 낙상 사고에 극심한 두려움을 갖고 계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고를 당할 확률은 적지만 그 사고를 내가 당한다면 내게는 100%다"라고요. 실제 확률은 1~2% 미만이지만, 불안이 높은 분들은 이를 100%의 위협으로 지각하곤 합니다. 대인관계 불안에서 전쟁이나 건강염려로 대상만 바뀔 뿐, 1%의 가능성을 100%의 재앙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작동 원리는 같습니다. 인지치료의 창시자 아론 벡(Aaron Beck)은 이를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인지적 오류'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극심한 불안에 갇혀 있을 때, 스스로 자기 생각의 왜곡을 포착해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당장 내 머릿속 공포가 절대적인 '사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과정은 혼자서 애쓰는 독학이 아니라, 상담사와 함께 훈련할 때 비로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약물 치료로 가슴 두근거림이나 통증 같은 신체 반응을 누르는 동안, 상담사와 매주 머릿속 자동적 사고를 밖으로 꺼내어 검증하는 연습을 합니다. "이 느낌이 정말 사실인가?", "내가 지금 느낌과 사실을 혼동하고 있진 않은가?" 질문을 던지며 왜곡된 인지를 바로잡아가는 것입니다. 2~3개월 동안 상담실에서 이 인지 수정 방식을 몸으로 익히고 나면, 상담이 끝난 후에도 스스로 왜곡된 인지를 찾아 재구성하며 불안을 조절하는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인지행동치료의 효과성을 높이 인정해 건강보험을 적용해 주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혼자 고민하지 않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전국민 마음건강 투자사업' 같은 지원 제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총 8회기 동안 본인 부담금 일부만으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으니, 꼭 활용하셔서 마음의 힘을 키워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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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럿명이 한자리에서 어울리는건 힘들어요

A. 질문자 님 !! 말주변 이야기와 중저음의 목소리 ~~~ 무척 공감이 됩니다. 얼마 전 오래된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5명이 모였는데 제가 호스트였고, 제가 예약한 저희 동네 맛집과 카페를 방문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모임은 연령대가 모두 다른 5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패턴이 발견됩니다. 5명 중 3명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로채기도 하고, 공감하는 척하다가 자기 이야기로 가져오기도 하고, 뜬금없는 주제로 넘어가지요. 때로는 2명이 동시에 각자 자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사람은 정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자님께서 "내가 한 말에 반응이 없어 상처를 받고 듣는 쪽을 선택했다"고 하셨지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내 목소리가 묻히거나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면 '내가 재미없는 사람인가', '내 말이 안 들리나' 싶어 마음이 위축되고 주눅 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 모임의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질문자님의 말주변이나 목소리 크기 문제라기보다 다들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타인의 말을 받아줄 여유가 없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시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그곳에서 주로 경청자의 역할을 합니다. 상담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에는 누군가의 깊은 공감이나 해결책보다는 '그저 내 말을 들어달라'는 욕구가 훨씬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몇 시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몇 시간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은 저를 사람들은 모임에 꼭 부르고 챙긴다는 점입니다. 다들 자기 말 하기 바쁜 세상에서 내 이야기를 가로채지 않고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은 어디서나 매우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모든 모임에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느낀 답답함은 어쩌면 '말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말하려 할 때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는 경청자의 존재감을 스스로 아직 발견하지 못하셨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상처받아 선택한 듣기이었을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그 고요하고 깊은 경청의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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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대방의 반응과 눈치를 많이 봐요

A. 질문자님의 글을 읽으며, 질문자님이 얼마나 스스로를 잘 관찰하고 계신지 느껴집니다. 자신이 남을 배려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계시고, 또 "나에게도 분명한 취향과 원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니까요. 이는 이미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건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좋은 신호입니다. 다만, '배려'의 의미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에서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인간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Carl Rogers)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진실성(진실된 태도)’을 이야기했습니다. 내 마음과 취향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데, 관계를 위해 또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 내 욕구를 억누르고 행동한다면, 이는 내 안의 진실성과 조금씩 멀어지게 됩니다. 타인을 향한 배려가 지속될수록, 역설적으로 내 자신에게는 진실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또한,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나중에 이러한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나를 맞춰주느라 애썼구나' 하는 미안함과 동시에 솔직하지 못했던 관계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마음과 다른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더라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해 나가는 경험.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상대와 더 성숙하고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배려 속에 감춰두었던 질문자님의 취향과 목소리도 조금씩 세상 밖으로 꺼내어 표현해 보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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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꾸 제 탓만 하는 버릇 고칠 수 있을까요?

A. 상담실을 찾는 내담자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죄책감입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같이 너무 착하고 천사같은 분들이세요 그런데 이 천사들의 마음이 지옥이라는게 문제이죠!! 이 천사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일 겁니다. 그러나 개중에 못된 인간들이 천사같은 사람들을 이용해 먹기도 하지요. 그런데 질문자님 처럼 남들에게 잘하려고 하고 하루 종일 신경쓰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잊어 버렸거나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죠 질문자님처럼 남들에겐 한없이 따뜻하고 잘하려고 애쓰는데, 정작 본인의 마음은 하루 종일 눈치 보느라 짓물러가는 거죠.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착한 천사들은 자꾸만 모든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걸까요? 그건 질문자님이 실제로 잘못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법보다 '남의 기분을 살피는 법'을 먼저 배워버렸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이 아니어도 내가 먼저 사과하고 고개를 숙이면, 적어도 그 상황의 불확실함과 갈등은 빠르게 끝낼 수 있었으니까요. 즉, 나를 자책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먼저 때리는 슬픈 방어기제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이 습관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제 내담자들의 죄책감에 대해 블로그에 적어둔 글이 있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 보시고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쪽지를 보내주셔도 좋겠습니다. https://masengi.tistory.com/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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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매사에 최악부터 상상하는 버릇은 고칠 수 있을까요?

A. 질문자님의 고민!! 너무 공감이 됩니다. 아울러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장 잘 쓰는 직업군 중 하나가 바로 의사겠지요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데로 되었으면 지금 저는 저세상 사람이겠죠 의사들은 왜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걸까요? 가능성이 적어도 언급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을 때 느끼는 안도감이 아닐까 싶네요 나름 불안을 방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의사들은 왜 최악의 시나리오부터 이야기할까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미리 최악을 상상해 뒀다가 막상 결과가 괜찮을 때 느끼는 그 안도감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질문자님이 자꾸 나쁜 상황부터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지 않으려고 미리 매를 맞아두는 일종의 방어 기제를 쓰는 거죠. 그렇게 나를 보호하려고 애써온 과정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질문하신 것처럼 이 습관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바꿀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만 무조건 괜찮아, 잘될 거야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요. 머리로는 안 믿어지는데 억지로 긍정해 봤자 마음만 더 피곤해지거든요. 대신 '아, 내 마음이 또 나를 지키려고 제일 나쁜 시나리오를 쓰고 있구나' 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알아차려 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리고 나쁜 시나리오에게 이름을 붙여주세요. 예를 들어 '찌질이', '멍청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붙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아이고 멍청이 왔구나!' 라고 이름도 불러 주시고 그 시나리오가 지나가길 기다려 보세요 혼자서 애쓰시면서 생각을 적어보고 산책도 해보셨던 그 시도들 자체가 이미 엄청난 노력이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책하지 마시고, 그동안 나를 지키느라 고생했던 내 마음에게 이제는 조금씩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 아니야" 하고 안심시켜 주는 연습을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자님의 노력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