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산책, 마음을 비우는 시간

요즘 날씨,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지 않나요?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서 겉옷을 챙겨야 하지만, 낮에는 햇살이 포근하고 하늘은 또 얼마나 높고 맑은지... 그냥 집에만 있기엔 정말 아까운 계절인 것 같아요.

 

저는 원래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괜히 마음이 가라앉고 지칠 때면 무작정 가까운 산을 찾는 편이에요. 이번에는 가을 정취 좀 느껴볼 겸 팔공산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가까이 있는 곳은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멀리 있는 유명 관광지는 큰맘 먹고 찾아가면서, 정작 내 곁에 있는 아름다움은 너무 쉽게 지나쳐온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창밖 하늘이 너무 투명하더라고요. 마침 특별한 일정도 없겠다, 집에서 뒹굴거리느니 바람이나 쐬고 오자는 생각에 가볍게 운동화 끈을 묶었습니다. 물 한 병이랑 간단한 간식거리만 챙겨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했죠.

 

산에 도착하니 역시 가을은 가을이더군요. 산 아래쪽엔 아직 초록빛이 꽤 남아 있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노랗고 붉게 물든 나무들이 하나둘 인사를 건네왔습니다. 특히 햇살을 머금은 단풍잎들이 정말 예술이었어요. 빨간색이라고 다 같은 빨강이 아니고, 노란색이라고 다 같은 노랑이 아니더라고요. 주황빛이 은은하게 섞인 잎도 있고, 끝부분만 수줍게 붉어진 잎도 있고... 평소라면 그냥 '단풍 들었네' 하고 지나쳤을 풍경인데, 그날은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됐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문득 웃픈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엔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가려고 서두르는데, 정작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와서조차 '정상에 빨리 올라가야지'라고 생각하는 제 모습이 참 우습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정상을 목표로 삼지 않기로 했어요. 그냥 걷다가 예쁜 풍경이 보이면 멈춰 서고, 숨이 차면 쉬어가고, 마음에 드는 자리가 있으면 한참을 앉아 있기로요.

 

가을날의 산책, 마음을 비우는 시간

 

그랬더니 평소의 산행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등산객들의 정겨운 웃음소리까지... 모든 게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한참을 걷다 길가에 앉아 물 한 모금을 마시는데, 그 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대단한 절경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나무가 있고, 바람이 불고, 햇살이 내리쬐는 평범한 산길이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참 편안해졌습니다.

 

사실 집에 있을 때 쉬고 있어도 제대로 쉬는 기분이 안 들 때가 많잖아요. 스마트폰 좀 들여다보다 보면 시간은 훌쩍 가 있고, 뉴스를 보다가 괜히 기분이 상하거나, 별것도 아닌 고민들이 머릿속을 뱅뱅 맴도는... 몸은 가만히 있는데 머릿속만 풀가동되는 그런 날들 말이에요. 그런데 산에서는 그런 소음들이 조금씩 잦아드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산에 온다고 해서 인생의 고민이 짠 하고 해결되지는 않겠죠. 내려가면 해야 할 일은 그대로고, 신경 쓰이는 문제들도 여전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 문제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의 온도가 조금 달라졌다고 할까요?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세상 무너질 듯 크게 느껴졌던 일이, 산을 내려올 때쯤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나름대로 발견한 '소소한 힐링 팁' 몇 가지를 공유해 볼게요.

 

첫 번째는 이어폰 빼고 걷기. 평소엔 음악이나 유튜브를 계속 듣는 편인데, 이번엔 일부러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요. 처음엔 좀 심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주변의 작은 소리들이 하나둘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사진 욕심 버리기. 예쁜 풍경을 보면 일단 카메라부터 켜게 되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진 찍느라 정작 눈앞의 풍경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딱 몇 장만 찍고 폰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사진으로 남긴 기록도 좋지만, 눈과 마음에 오래 담아둔 풍경이 훨씬 더 선명하게 기억될 때가 있더라고요.

 

세 번째는 일부러 천천히 걷기. 운동이 목적이라면 걸음 수나 시간에 신경 쓰겠지만, 힐링이 목적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남들보다 늦게 가도 좋고, 정상까지 못 가도 괜찮습니다. 내가 기분 좋을 만큼만 걷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마음에 드는 곳에서 딱 10분만 '멍 때리기'입니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자꾸 폰을 확인하고 싶고, '이제 움직여야 하지 않나' 하는 조바심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 고비를 조금만 넘기면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주는 평온함이 찾아옵니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바로 그때였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오늘 하루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보내고 있구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겪어야만 좋은 하루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가까운 산에 올라 계절이 바뀌는 걸 지켜보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꽤 충만해질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마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은 또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평소 마시던 그 커피일 텐데, 몸을 움직이고 좋은 풍경을 보고 왔더니 향기부터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단풍의 계절도 그리 길지 않겠죠. 그래서 이번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시간이 나는 대로 가까운 산을 몇 번 더 찾아갈 생각입니다. 꼭 유명한 곳이 아니어도 좋아요. 집 근처 야트막한 뒷산이나 산책로가 잘 된 숲길이면 충분하겠죠. 큰돈 들일 필요도 없고, 복잡한 준비 없이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힐링이니까요.

 

혹시 요즘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이유 없이 마음이 답답하고 지친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 주말엔 가까운 산에 한번 다녀오세요.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가을을 만나러 가겠다'는 가벼운 기분으로요.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휴식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이번 가을 최고의 선물은 산에서 보낸 평범한 몇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방법으로 마음을 쉬게 해주고 계신가요? 혹시 혼자 조용히 걷기 좋은 산이나, 나만 알고 싶은 단풍 명소가 있다면 살짝 추천해 주세요. 다음 산행 때 꼭 참고하고 싶네요!

 

가을날의 산책, 마음을 비우는 시간


가을날의 산책, 마음을 비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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