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이었네요

“간결함은 재치의 핵심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제2막 2장

 

말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이었네요

 

“간결함은 재치의 핵심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제2막 2장

얼마 전 지인에게 메시지 하나가 왔어요.

"토요일에 몇 시까지 가면 돼?"

정말 간단한 질문이었죠.

그냥 오전 9시까지 오라고 답하면 끝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겠다는 생각으로 답장을 길게 쓰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 편이 좋고, 주차장이 좁아서 조금 서둘러야 하고, 혹시 비가 오면 일정이 달라질 수 있으니 날씨도 확인하라고 적었죠.

가는 길에 편의점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필요한 물건을 사면 편하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어요.

한참 작성하다 보니 메시지가 제법 길어졌더라고요.

스스로도 꽤 친절한 안내라고 생각하면서 전송 버튼을 눌렀어요.

잠시 뒤 답장이 왔어요.

"그래서 몇 시에 가면 되는데?"

순간 웃음이 터졌어요.

분명 친절하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대답이 긴 문장 속에 묻혀버린 거예요.

그 일을 떠올리다가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명언을 다시 읽게 됐어요.

"간결함은 재치의 핵심이다."

짧지만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말이에요.

 

말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이었네요


이 명언을 말한 사람부터 꽤 재미있어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는 폴로니어스라는 인물이 등장해요.

그는 왕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말을 길게 늘어놓는 모습을 보여줘요.

재미있는 건 그가 바로 '간결함은 재치의 핵심'이라는 말을 한다는 점이에요.

짧게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놓고 정작 본인은 장황한 설명을 이어가는 거죠.

심지어 왕비가 그에게 꾸밈을 줄이고 요점만 말하라는 취지로 이야기하기도 해요.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장면인데 지금 읽어도 웃음이 나와요.

주변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모습이거든요.

회의를 하다 보면 유독 말이 긴 사람이 있어요.

질문은 단순한데 배경 설명부터 시작해서 과거의 사례, 관련된 사람들 이야기까지 끝없이 이어지죠.

한참 듣고 있으면 처음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릴 정도예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그 사람이 마지막에 꼭 이런 말을 한다는 거예요.

"아무튼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미 10분 넘게 이야기했는데 이제부터 간단히 말하겠다는 거죠.

생각해 보면 저도 비슷한 표현을 자주 사용해요.

"짧게 이야기하자면"이라고 시작한 뒤 전혀 짧지 않은 설명을 늘어놓을 때가 있거든요.

어쩌면 폴로니어스는 몇백 년 전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설명이 길어질수록 중요한 내용이 사라질 때가 있어요.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업무를 설명할 때도 비슷한 일이 생겨요.

상대방이 어떤 작업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었다고 생각해 볼게요.

그런데 설명하는 사람은 왜 그 작업이 필요한지부터 이야기해요.

처음 그 일을 맡게 된 배경과 예전에 있었던 문제까지 설명하죠.

물론 그런 정보가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상대방이 당장 알아야 하는 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일 수 있잖아요.

설명을 듣는 입장에서는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셈이죠.

예전에 어떤 사람이 꽤 복잡한 일을 설명하면서 세 문장만 사용했던 적이 있어요.

먼저 해야 할 일을 말하고, 그다음 주의할 점을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 설명했어요.

신기하게도 그 짧은 설명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이후 비슷한 작업을 할 때도 그 사람이 알려준 순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거든요.

그때 알았어요.

설명을 많이 하는 것과 설명을 잘하는 건 전혀 다른 능력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물론 어려운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해요.

무조건 짧게 말한다고 좋은 설명이 되는 건 아니겠죠.

다만 설명하는 사람이 알고 있는 걸 전부 이야기하기보다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내용을 골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인 것 같아요.

 

말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이었네요


인간관계에서도 말이 많아지면 이상한 일이 생겨요.

누군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자주 조언을 해요.

상대방이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고 싶어지죠.

그런데 가끔은 조언이 길어지면서 대화의 중심이 바뀌기도 해요.

처음에는 상대방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제 경험담을 늘어놓고 있는 거예요.

예전에 겪었던 비슷한 상황을 설명하고, 당시 어떻게 해결했는지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까지 친절하게 덧붙이죠.

그러다 문득 상대방을 보면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때가 있어요.

아마 제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죠.

생각해 보면 누군가 고민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언제나 긴 조언을 원하는 건 아닐 거예요.

어떤 때는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짧은 말이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반대로 구체적인 해결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말의 길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 같아요.

우리는 가끔 상대방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너무 많이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말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이었네요


짧은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

돌이켜 보면 살아오면서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 중 정확하게 기억하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아요.

길고 복잡한 설명보다 짧은 한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죠.

누군가 실수했을 때 들었던 "그럴 수도 있지."

힘든 일을 끝냈을 때 들었던 "수고 많았어."

무언가 망설이고 있을 때 들었던 "한번 해봐."

이런 말들은 특별히 화려한 표현도 아니에요.

어려운 단어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죠.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긴 설명보다 더 큰 힘이 되기도 해요.

아마 그 말들이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순간에 전달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같은 말이라도 언제,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니까요.

셰익스피어가 말한 간결함도 단순히 문장을 짧게 줄이라는 뜻만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불필요한 표현을 덜어내고 정말 전하고 싶은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도 읽혀요.


말이 길어지는 데에도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자신이 충분히 이해받지 못할까 봐 설명을 덧붙여요.

오해를 받을까 걱정돼 같은 이야기를 다른 표현으로 반복하기도 하죠.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거예요.

저도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의견을 전달할 때 그런 경향이 있어요.

간단하게 이야기해도 될 일을 굳이 길게 설명하면서 이유를 여러 개 덧붙이곤 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필요한 설명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상대방이 제 의견에 동의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말을 계속 늘리고 있는 걸까.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른 문제 같아요.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건 도움이 되지만, 상대방이 이미 이해한 뒤에도 계속 설명하면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런 면에서 간결하게 말하는 능력은 단순한 말솜씨보다 자신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정확히 아는 능력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모든 말을 줄이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

사실 저는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친한 친구와 만나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몇 시간씩 나누는 것도 즐겁고, 가족과 지나간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대화에서는 효율성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어떤 이야기는 목적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더 즐겁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모든 대화를 짧고 정확하게 끝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부탁할 때는 조금 더 신경 써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전부 이야기하기보다 상대방이 알아야 할 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는 거죠.

그리고 상대방이 이미 이해했다면 굳이 설명을 반복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때로는 말을 덧붙이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친절한 행동일 수도 있겠죠.


오늘부터 한 가지 습관을 바꿔보려고 해요.

누군가 질문하면 일단 질문에 대한 답부터 이야기하려고 해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그다음에 덧붙이고요.

특히 메시지를 보낼 때는 전송하기 전에 한번 읽어보려고 해요.

혹시 핵심보다 배경 설명이 더 긴 건 아닌지 말이에요.

물론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이라 쉽게 바뀌지는 않겠죠.

아마 앞으로도 "간단히 말씀드리면"이라고 시작해 놓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순간이 생길 거예요.

그럴 때마다 《햄릿》에 등장하는 폴로니어스를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짧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은 긴 이야기를 이어갔던 인물 말이에요.

재미있는 건 오늘 이 명언을 소개하겠다며 저 역시 꽤 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쯤 되면 폴로니어스를 남의 일처럼 웃을 처지가 아닌 것 같네요.

그래도 마지막만큼은 조금 짧게 끝내볼게요.

좋은 말은 많이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제대로 닿는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 주변에도 "짧게 말할게"라고 해놓고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분이 계신가요?

혹시 그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요.

저는 일단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려고요.

 

말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이었네요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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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스
    듣다 보니 맞는 말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너무 길게 하면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힘들 거 같긴 해요 간결함이 생명인 거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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