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무 무겁고 답답해서 며칠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가 결국 이곳에 조심스럽게 제 가슴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아 보아요.
저는 오 남매 중에 맏딸로 태어나서 평생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늙으신 부모님 모시면서 정신없이 살아온 60대 중반의 평범한 주부예요.
우리 집이 비록 남들처럼 부유하거나 번듯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 살아계실 때만 해도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가 되면 온 가족이 좁은 고향 집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새도록 웃고 떠들며 참 우애가 깊고 정이 넘쳤어요.
서로 맛있는 반찬을 새로 하면 바리바리 싸서 챙겨주고 누구 하나 힘든 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두 팔 걷고 나서서 도와주던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끈끈한 핏줄들이었는데 어느새 남보다 못한 아주 차갑고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려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세상에 남은 피붙이는 우리 형제들뿐이니 서로 더 똘똘 뭉치고 챙기며 의지할 줄 알았는데 막상 집안의 큰 기둥이 사라지고 나니 우리 남매들을 단단하게 이어주던 동아줄이 맥없이 툭 끊어져 버린 기분이 들어서 매일매일이 서글픕니다.
예전에는 명절이나 제사가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다 같이 모여서 시장도 보고 기름 냄새 풍기며 전도 부치고 송편도 빚으면서 그동안 밀린 삶의 애환도 나누고 참 시끌벅적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거든요.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배어 있던 그 낡은 고향 집은 우리 오 남매에게는 언제든 돌아가서 쉴 수 있는 따뜻한 둥지였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시고 나니까 당장 우리 형제들이 마음 편히 모일 구심점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처음 1, 2년 동안은 제가 명색이 맏딸이니까 우리 집으로 동생들을 불러 모아서 부모님 제사도 정성껏 지내고 따뜻한 밥도 해 먹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각자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한 번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어지더라고요.
어쩌다 경조사나 큰일이 생겨서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마련되어도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속을 터놓고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아니라 묘하게 서로 곁눈질로 눈치를 보고 날이 선 뾰족한 말들이 오가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갈등의 시작은 정말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곪기 시작했어요.
부모님 장례식을 치르면서 들어갔던 비용 문제들을 정산할 때나 낡은 고향 집을 정리하면서 부모님 유품을 치울 때 누군가 무심코 던진 섭섭한 말 한마디가 불씨가 되더라고요.
저는 맏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에 궂은일을 도맡아 희생한다고 생각했는데 동생들 입장에서는 제가 언니라는 이유로 너무 제멋대로 독단적으로 결정한다고 불만을 가졌던 모양이에요.
서로 밥 한 끼 먹으며 차분하게 마음을 터놓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면 충분히 웃으며 오해를 풀 수 있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었는데 그 당시에 서로 몸도 지치고 감정이 격해져서 쏘아붙인 말들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흉터로 남아버렸어요.
한번은 둘째 동생이 부모님 제사 때 시댁 집안일이 너무 바빠서 도저히 못 올 것 같다고 미안하다며 연락을 했더라고요.
제가 맏이로서 다른 날도 아니고 부모님 제사인데 하루 시간 빼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섭섭한 티를 역력하게 냈더니 둘째가 갑자기 저한테 언니는 맨날 언니 혼자만 부모님께 효도하고 희생한 줄 아냐고 나도 묵묵히 뒤에서 할 만큼 했다며 그동안 억눌러왔던 섭섭한 감정들을 무섭게 쏟아냈어요.
그 모진 말에 저도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내가 어릴 때 너희들 업어 키우고 뒷바라지하느라 내 청춘 다 바쳤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런 섭섭한 말을 하냐고 핏대를 세우며 큰 소리로 다투고 말았네요.
그날 이후로 둘째와는 아예 자존심을 세우며 연락을 완전히 끊고 지내고 있고 다른 동생들도 저희 둘 사이에 끼어서 괜히 눈치를 보느라 슬금슬금 제 연락을 피하는 게 느껴져서 이제는 가족 모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제게는 너무나 무겁고 두려운 짐 덩어리가 되어버렸어요.
나이가 들수록 내 곁에 남는 건 피붙이밖에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데 저는 왜 늙어갈수록 형제들과 마음이 멀어지고 이토록 뼈저리게 외롭고 쓸쓸한 건지 캄캄한 밤마다 남몰래 눈물이 나요.
동네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친정 자매들이랑 같이 철마다 단풍 구경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닌다며 자랑할 때면 부러운 마음을 넘어서 핏줄 하나 챙기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우연히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웃으며 지나가는 나이 든 자매들의 뒷모습만 봐도 옛날 우리 동생들 생각이 나서 길 한복판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우리가 어릴 때 그 비좁은 단칸방에서 서로 얇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장난치고 웃고 놀았던 그 시절이 눈앞에 생생한데 이제는 전화 한 통 가볍게 하는 것조차 어색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고 억울해서 잠이 안 와요.
속이 답답해서 화병이 날 지경이라 남편에게 털어놓아 보아도 원래 형제라는 게 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남남처럼 각자도생하며 사는 거라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덤덤하게 말하는데 그 말이 제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더라고요.
동생들 생일이나 조카들 졸업식 같은 가족들의 기념일이 다가오면 제가 먼저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어볼까 수백 번도 더 망설이고 안방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밤새도록 반복을 해요.
하지만 혹시나 제가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 다가갔다가 또 퉁명스럽고 차가운 반응이 돌아오거나 과거의 그 묵은 감정들이 다시 들추어져서 씻을 수 없는 더 큰 상처를 받게 될까 봐 덜컥 겁부터 나서 결국 무거운 휴대폰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만 쉬게 되더라고요.
제가 명색이 오 남매의 맏딸인데 바다처럼 속 넓게 먼저 품어주지 못하는 옹졸한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핏줄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늙은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끔찍하게 괴롭히는 건지 몹시 야속해요.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지금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미워하고 외면하는 우리 남매들 모습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실까 생각하면 죄스러워서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크게 호통을 쳐서라도 우리 남매들을 다시 끈끈하게 하나로 묶어주셨을 텐데 이제는 그럴 어른이 안 계시니까 사소한 오해의 작은 매듭이 굴러가며 커져서 도저히 풀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엉켜버린 것 같아 매일매일이 절망스럽습니다.
다른 집들도 다들 이렇게 부모님 떠나보내고 나면 뿔뿔이 흩어지고 형제들끼리도 마음이 멀어져 남처럼 무심하게 지내는 게 당연한 인생의 수순인 건지 아니면 저만 유독 못나고 모자라서 소중한 핏줄들을 다 잃어버리고 외롭게 사는 건지 너무나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에 이렇게 긴 글을 남겨 보아요.
머리로는 이대로 자존심만 내세우다 가는 나중에 우리 형제 중 누구 하나 큰 병에 걸리거나 죽어서 장례식장에서나 어색하게 마주 보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아 너무나 두려운데 이 차갑게 굳어버린 마음의 벽을 어디서부터 허물어야 할지 도무지 현명한 방법을 모르겠어요.
이곳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혹시 저처럼 부모님 돌아가시고 형제들과 사이가 멀어지거나 사소한 오해와 서운함으로 오랫동안 연락을 뚝 끊고 지내보신 아픈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실까요.
만약 계신다면 그 먹먹하고 시리고 텅 빈 마음을 평소에 어떻게 다스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살아가고 계시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어요. 끝까지 맏이라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그저 내 남편 내 자식들 삶에만 집중하며 동생들을 완전히 남처럼 지우고 사는 게 현명한 정답인지 알고 싶어요.
아니면 더 늦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기 전에 제가 먼저 모든 억울함과 서운함을 꾹 참고 손을 내밀어 화해를 시도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게 맞는 건지 도무지 제 좁은 소견으로는 지혜가 떠오르지를 않네요.
만약 제가 맏이로서 먼저 눈 딱 감고 밥 한 끼 먹자고 전화를 걸어 용기를 낸다면 도대체 어떤 부드러운 말부터 조심스럽게 꺼내야 그동안 겹겹이 쌓인 단단한 오해의 장벽을 허물고 동생들의 차갑게 닫힌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 수 있을까요.
과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 뾰족하고 모진 말들을 어떻게 감싸 안고 다시 예전 고향 집에서 나누었던 그 다정했던 눈빛을 되찾을 수 있을지 그 구체적인 대화의 실마리와 마음가짐을 절실하게 찾고 싶어요.
다들 나이 먹고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마음도 헛헛할 텐데 같은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 등 돌리고 남처럼 사는 이 무거운 마음의 짐을 이제는 제발 그만 훌훌 벗어 던지고 온전한 평안을 얻고 싶습니다.
긴 세월 동안 곪아 터진 제 아프고 부끄러운 가족 이야기를 끝까지 정성껏 읽어주셔서 정말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만 끙끙 앓았던 무거운 체증을 이렇게 글로 다 쏟아내고 나니 가슴 한구석을 꽉 막고 있던 커다란 돌덩이가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아 위안이 되네요.
저와 비슷한 아픔을 겪어보셨거나 인생의 지혜를 가지신 분들의 따뜻하고 현실적인 위로와 조언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남은 제 소중한 인생에서는 더 이상 귀한 핏줄 때문에 가슴 치며 아파하는 일 없이 저 자신을 챙기며 동생들과도 아주 편안하고 따뜻한 거리를 유지하며 늙어갈 수 있기를 매일 밤 기도해 봅니다.
제 기나긴 넋두리를 들어주셔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코치님 덕분에 고민이 해결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