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 나르시시스트 성향일까요?
주변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에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날수록 함께 있는 게 불편해지는 사람이 있어요. 처음에는 자신감도 있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상황을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 고민입니다.
이 사람은 본인이 잘한 일은 굉장히 크게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이 잘한 일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어요. 대화를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본인의 경험이나 성과 이야기로 넘어가고, 제가 힘든 일을 이야기하면 공감해 주기보다는 본인은 더 힘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원래 표현 방식이 다른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니 저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쌓이더라고요.
특히 의견이 다르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본인이 잘못한 부분이 있어도 쉽게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제가 예민하게 받아들였다거나 말을 잘못해서 일이 커진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요. 저는 분명히 기분이 상한 일이 있었는데도 대화를 마치고 나면 제가 너무 까다로운 사람인가 싶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제 생각을 설명해서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게 느껴져요.
그렇다고 항상 나쁜 모습만 보이는 건 아니에요. 기분이 좋을 때는 친절하고 잘해 주기도 해서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헷갈리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좋은 모습도 분명히 있는데, 반복해서 상처받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을 접하면서 혹시 이런 사람에게도 자기애적인 성향이 있는 건지 궁금해졌어요. 물론 몇 가지 행동만으로 누군가를 나르시시스트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의 기분이나 반응을 지나치게 살피게 되고, 대화가 끝난 뒤에도 제가 잘못한 건 없는지 계속 생각하게 되는 제 모습이 걱정돼요.
이런 사람과는 제 입장을 계속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상대방을 바꾸려 하기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제 감정을 지키는 게 나을까요? 비슷한 관계를 경험해 보신 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관계를 이어갈지 결정하셨는지 조언을 듣고 싶어요.
나르시시스트 - 상사·부모·연인 대처, 가스라이팅 극복 | 트로스트 커뮤니티 인기글
- 01코치 답변다른 사람의 노력과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기뻐해 주기보다, 꼭 "운이 좋았다"거나 "너 치고는 잘했다" 같은 부정적인 덧말을 붙이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씁쓸하고 어색하셨을 상황이 깊이 공감됩니다. 진심 어린 축하가 오가야 할 자리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기쁨이 깎여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정작 내 마음까지 헛헛해지고 눈치를 보아야 했던 시간들이 참 답답하고 피곤하셨을 것 같아요. 타인의 성과 앞에서 유독 깎아내리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타인의 인정'에 자신의 가치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진짜 자존감이 단단하다면 남이 칭찬받거나 주목받을 때 내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완충지대가 약한 사람들은 타인의 성공을 축하해 주는 순간 자신이 상대적으로 뒤처지거나 열등해진다는 거대한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평가'와 '깎아내리기'라는 보호막을 쳐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단명이나 명칭에 상대를 단정 지어 묶을 필요는 없지만, 나의 기쁨을 축하받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을 망치게 만드는 언어 습관을 지닌 사람 앞에서 내 마음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단정한 실천 기준을 정리해 드립니다. 나의 소중한 기쁜 소식 공유를 '단정하게 제한'하기 내 삶의 기쁜 소식이나 성과를 굳이 그 사람 앞에서 먼저 꺼내어 평가받을 기회를 주지 마세요. 내 기쁨을 함께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과 나눌 때, 내 마음의 에너지도 훨씬 건강하게 채워집니다. 상대방의 깎아내리는 말에 '반응의 무게' 실어주지 않기 누군가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말을 건넬 때 "그렇군요" 혹은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하고 담백하고 단정하게 넘겨버리세요. 그 사람의 부정적인 프레임에 휘말려 반박하거나 동조하지 않고 조용히 흘려보내는 완충지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내 마음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주변 사람이 피해를 볼 때는 '당사자의 노력'을 단단하게 인정해 주기 그 사람이 다른 동료나 지인의 성과를 깎아내릴 때, 당사자를 바라보며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하고 단정하고 명확한 축하를 건네어 분위기를 다정하게 전환해 보세요. 그 사람의 언어 습관을 지적해서 어색한 상황을 만들기보다, 진짜 노력을 보듬어주는 다정한 시선을 던져주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위로가 됩니다. 상대와의 거리감을 '내 마음이 편안한 지점'으로 조정하기 그 사람을 바꾸거나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이 사람은 남을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려운 사람이구나" 하고 담백하게 인정해 주세요. 적당히 예의를 갖추되 깊은 마음이나 중요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다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사연자님의 마음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타인의 기쁨을 함께 축하해 줄 줄 아는 사연자님의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은 그 자체로 참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남을 깎아내려야만 안심하는 타인의 서툰 반응에 마음 흔들리지 마시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지혜로운 거리를 차근차근 만들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152026.10.29
- 02코치 답변칭찬 끝에 꼭 씁쓸한 한마디를 덧붙이는 친구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으셨을 텐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자신의 감정을 결코 유난스럽다거나 예민하다고 자책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상대의 의도가 진심 어린 축하든 유머든 관계없이,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에 씁쓸함과 피로감이 반복해서 남는다면 그것은 내 마음이 보내는 아주 정직하고 당연한 신호입니다. 겉으로는 칭찬을 건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상대를 한 단계 아래로 두고 평가하는 듯한 "너 치고는", "의외로" 같은 언어 습관은 듣는 사람의 자존감을 은근하게 갉아먹는 완곡한 평가에 해당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기 전에 미리 마음의 준비부터 해야 하고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면, 이미 그 관계에서 사연자님의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난번 "왜 꼭 그런 말을 붙여?"라고 물으셨던 것은 날카롭거나 유난스러운 대응이 아니라, 내 선을 지키기 위한 아주 정당하고 건강한 표현이었습니다. 친구가 "왜 꼬아 듣냐"며 넘긴 것은 자신의 대화 방식을 돌아보기보다 유머라는 이름 뒤로 회피한 것에 가깝습니다. 굳이 상대를 인터넷의 진단명이나 틀에 맞추어 단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 말들이 사연자님에게 반복적인 불쾌감과 피로를 주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 그 자체입니다. 관계를 끊을 만큼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실천 기준을 정성껏 정리해 드립니다. 내 기쁨과 좋은 소식의 공유를 단정하게 줄이기 친구에게 나쁜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내 기쁜 소식에 씁쓸한 말을 덧붙이는 습관이 바뀔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제는 그 친구에게 마음을 깊이 열고 솔직한 소식을 전하기보다, 적당한 완충지대를 두고 일상적인 대화 위주로 관계의 무게를 가볍게 조정해 보세요. 불쾌한 평가가 돌아올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담백하게 응수하기 "너 치고는 빨리 늘었다"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억지로 웃어주거나 속으로 참지 마시고 "응, 나 원래 잘해" 혹은 "그래? 나는 내 성과가 마음에 드는데" 하고 미소 띠며 단정하게 내 입장을 전해 보세요. 내 가치를 상대의 평가에 맡기지 않고 담백하게 받아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주도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감정 표현의 한계를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닌 '나를 보호하는 것'에 두기 상대에게 내 불쾌함을 매번 설득하고 바꾸려 애쓰다 보면 오히려 진이 빠질 수 있습니다. "이 친구는 말을 이렇게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인정하되, 그 영향력이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는 완충지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지혜롭습니다. 소중한 기억이 있는 친구와의 관계를 당장 끊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내 감정을 부정하거나 스스로를 탓하지 마시고,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다정한 거리를 찾아 천천히 거리를 조정해 나가시기를 응원합니다.130026.10.29
- 03코치 답변만나고 오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지치고 작아지는 기분이 드셨다니 마음이 참 무거우셨겠어요. 작성자님처럼 상대의 상황에 깊이 공감하고 배려하려 노력하는 분일수록 이러한 일방적인 대화 패턴에서 심리적 소모가 훨씬 더 큽니다. 심리사회학적으로 보면 그분은 대화의 주도권을 통해 자신의 정서적 결핍을 채우려는 자기중심적 대화 특성을 크게 보이고 있어요.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자신의 억울함과 피해 의식을 확인받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상태입니다. 작성자님의 고민에 더 큰 고통으로 답하거나 그래도 넌 낫잖아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감정의 상호작용을 차단하는 대표적인 무력화 태도예요. 내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만 모임이 평화롭다면 이는 불균형하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신호입니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적 거리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대처가 필요해요. 앞으로는 감정적 위로나 깊은 공감을 기대하며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기보다 중립적이고 가벼운 주제 위주로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또한 상대가 또다시 자기 이야기로 대화를 독점하려 할 때는 유연하게 대화의 주제를 전환하거나 시간을 핑계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정리하는 연습이 도움을 줍니다.100026.10.29
- 01코치 답변절대 스스로를 탓하거나 꼬아서 듣는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작성자님이 느끼시는 혼란과 답답함은 너무나 정당하며,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버티기 힘든 전형적인 심리적 가스라이팅이자 이중신호 상황입니다. “책임질 테니 편하게 해라” 해놓고 확인하면 “왜 보고 안 했냐” 하고, 확인하러 가면 “이것도 판단 못 하냐”고 하는 구조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비난받도록 설계된 외통수입니다. 여기에 외부에서는 ‘좋은 상사인 척’ 칭찬하고, 둘만 있으면 작성자님의 성과를 폄하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공은 내 것, 과실은 남 탓’ 유형의 상사 특징입니다. 심장이 뛰고 퇴근 후 계속 복기하게 되는 건 작성자님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사의 무성의하고 변덕스러운 태도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기때문입니다. 기준이 일관되지 않으면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커지고, 결국 간단한 업무 판단조차 두려워질 수 있습니다. 팀장님의 성격을 진단하기보다, 우선 말보다 구체적인 업무 기준과 기록을 중심으로 대응해 보세요. 지시를 메일로 남기는 것은 불신이 아니라 업무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과정입니다. “제가 정확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우선순위와 중간 확인 시점을 정해 주시면 그 기준에 맞춰 진행하겠습니다”라고 요청해 보세요. 중요한 지시와 변경 사항은 간결하게 기록해 두고,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면 업무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정리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퇴근 후에는 오늘의 대화를 되짚으며 자신의 잘못을 찾기보다, 실제로 수정이 필요한 업무가 있는지만 확인하고 복기를 멈추는 연습을 해 보세요. 모든 사람의 기대를 미리 읽고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상사의 반응이 늘 작성자님의 업무 능력을 정확하게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요. 자신의 판단을 무조건 의심하지 마시고, 객관적인 기준과 기록을 바탕으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211026.10.24
- 02코치 답변다른 사람의 노력과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기뻐해 주기보다, 꼭 "운이 좋았다"거나 "너 치고는 잘했다" 같은 부정적인 덧말을 붙이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씁쓸하고 어색하셨을 상황이 깊이 공감됩니다. 진심 어린 축하가 오가야 할 자리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기쁨이 깎여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정작 내 마음까지 헛헛해지고 눈치를 보아야 했던 시간들이 참 답답하고 피곤하셨을 것 같아요. 타인의 성과 앞에서 유독 깎아내리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타인의 인정'에 자신의 가치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진짜 자존감이 단단하다면 남이 칭찬받거나 주목받을 때 내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완충지대가 약한 사람들은 타인의 성공을 축하해 주는 순간 자신이 상대적으로 뒤처지거나 열등해진다는 거대한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평가'와 '깎아내리기'라는 보호막을 쳐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단명이나 명칭에 상대를 단정 지어 묶을 필요는 없지만, 나의 기쁨을 축하받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을 망치게 만드는 언어 습관을 지닌 사람 앞에서 내 마음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단정한 실천 기준을 정리해 드립니다. 나의 소중한 기쁜 소식 공유를 '단정하게 제한'하기 내 삶의 기쁜 소식이나 성과를 굳이 그 사람 앞에서 먼저 꺼내어 평가받을 기회를 주지 마세요. 내 기쁨을 함께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과 나눌 때, 내 마음의 에너지도 훨씬 건강하게 채워집니다. 상대방의 깎아내리는 말에 '반응의 무게' 실어주지 않기 누군가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말을 건넬 때 "그렇군요" 혹은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하고 담백하고 단정하게 넘겨버리세요. 그 사람의 부정적인 프레임에 휘말려 반박하거나 동조하지 않고 조용히 흘려보내는 완충지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내 마음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주변 사람이 피해를 볼 때는 '당사자의 노력'을 단단하게 인정해 주기 그 사람이 다른 동료나 지인의 성과를 깎아내릴 때, 당사자를 바라보며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하고 단정하고 명확한 축하를 건네어 분위기를 다정하게 전환해 보세요. 그 사람의 언어 습관을 지적해서 어색한 상황을 만들기보다, 진짜 노력을 보듬어주는 다정한 시선을 던져주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위로가 됩니다. 상대와의 거리감을 '내 마음이 편안한 지점'으로 조정하기 그 사람을 바꾸거나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이 사람은 남을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려운 사람이구나" 하고 담백하게 인정해 주세요. 적당히 예의를 갖추되 깊은 마음이나 중요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다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사연자님의 마음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타인의 기쁨을 함께 축하해 줄 줄 아는 사연자님의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은 그 자체로 참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남을 깎아내려야만 안심하는 타인의 서툰 반응에 마음 흔들리지 마시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지혜로운 거리를 차근차근 만들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152026.10.29
- 03코치 답변작성자님, 서운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대화가 어느새 내 말투와 예민함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고, 결국 내가 사과하고 끝나는 일이 여러 번 쌓였으니 처음에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놓치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아직 서운한데 이미 끝난 이야기라 꺼내기 어렵고, 친구에게 말하면서도 상대의 좋은 점부터 덧붙이게 되는 마음도 이해돼요. 제 마음을 계속 접게 되는 이유를 물으셨는데, 그 질문이 이미 이 일의 중심을 짚고 있어요. 그 이유를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대화가 서운했던 행동에서 내 표현 방식으로 옮겨 가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이야기를 지키는 일에서 나를 변호하는 일로 바뀌어요. 그때 사과가 가장 빠르게 분위기를 되돌리는 방법이라서, 반복될수록 마음을 접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요. 거기에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 관계가 흔들릴까 하는 두려움, 헤어지라는 말에 대한 걱정이 겹치면 말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게 느껴지고요. 그러니 마음을 접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만든 방식이에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 몇 장면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하실 필요도 없어요. 일부러 늦은 게 아니라는 건 사실일 수 있고, 몰아간다고 느낀 것도 그 사람에게는 진짜 감정일 수 있어요. 그리고 동시에 연락 없이 늦어서 내가 서운했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두 가지는 함께 성립해요. 둘 중 하나만 맞아야 한다는 틀이 혼란을 만들고 있어요.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도, 내가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서운함은 상대의 의도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내게 일어난 영향에 대한 보고예요. 그래서 말하는 구조를 바꿔 보세요. 행동의 의도를 묻지 않고, 영향과 바람만 말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렇게요. 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닌 건 알아. 그런데 연락 없이 늦으면 내가 기다리면서 걱정되고 서운해. 앞으로 늦을 것 같으면 한 줄만 보내 줘. 일부러라는 말이 나올 자리를 먼저 인정해 두고, 내 마음과 요청 하나만 남기는 구조예요. 그래도 대화가 내 말투 이야기로 넘어가면 말투가 날카로웠다면 미안해, 그런데 내가 서운했다는 이야기는 그대로 하고 싶어, 하고 사과와 내용을 분리해서 말하세요. 사과를 하더라도 서운함까지 접지는 않는 거예요. 이미 끝난 이야기라는 부담은 한 문장으로 풀 수 있어요. 지난번에 하려던 이야기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한 번만 다시 말하고 싶어, 하고 목적과 분량을 먼저 밝히면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 아니라 마무리를 하는 일이 돼요. 대화 직전에는 하고 싶은 말을 한 줄로 적어 두세요. 대화가 옮겨 가도 그 한 줄이 돌아올 자리가 돼요. 대화 뒤에는 처음에 하려던 말이 전달됐는지 스스로 확인하세요.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지는 한두 달 지켜보면서 기록해 보시길 권해요. 서운함을 말했을 때 상대가 내용을 듣는지, 매번 화제가 바뀌는지, 달라지려는 모습이 있는지를 날짜와 함께 한 줄씩 적으면 내 감각을 의심하는 마음이 줄어요. 친구에게도 상대의 좋은 점은 빼고 일어난 일만 먼저 말해 보세요. 한 명에게라도 있는 그대로 말해 본 경험이 판단을 단단하게 해 줘요. 이 대화가 계속 나를 작게 만든다고 느껴진다면, 연애 관계의 의사소통을 함께 정리해 주는 상담을 이용해 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예요. 이번 주에는 다음에 서운한 일이 생기면, 말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한 줄로 적어 두고 그 한 줄을 끝까지 전해 보세요.181026.10.23
- 01코치 답변작성자님, 평소엔 무심하다가 필요할 때만 다정해지는 모습을 반복해서 겪으면 연락이 와도 반가움보다 이번엔 무슨 부탁일까 하는 계산이 먼저 올라오고, 그런 자신이 씁쓸하셨겠어요. 친절을 있는 그대로 받지 못하는 게 속상하다고 하셨지만, 반복된 경험이 만든 자연스러운 경계심이니 사람을 쉽게 의심하는 성격 때문은 아니에요. 그리고 나르시시스트인지 궁금하셨는데, 몇 가지 행동만으로 성향을 판단하기는 어렵고 사실 판단하지 않으셔도 돼요. 말씀하신 대로 이 사람이 어떤 유형이냐보다 이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대할지가 훨씬 중요해요. 저는 사람이 아니라 코치라서 직접 겪은 경험담은 드릴 수 없지만, 이런 관계를 다루는 방향은 나눠드릴게요. 먼저 질문에 답하면, 필요할 때만 가까워지는 관계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는 정해진 선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하는 거예요. 서로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도 분명 존재하고,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에요. 다만 그런 관계는 깊은 우정이 아니라 필요 기반의 관계라고 이름을 붙여 두면 기대가 알맞게 조정돼요. 지금 서운한 이유의 상당 부분은 이 사람에게 평소에도 존중받는 사이라는 기대를 걸었기 때문일 수 있어요. 그 기대를 내려놓고 이 관계의 크기를 현실에 맞게 정하면 부탁이 와도 마음이 덜 흔들려요. 대하는 마음가짐은 처음부터 선을 긋기보다 친절은 유지하되 기대를 줄이는 쪽을 권해요.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과 마음을 깊이 내주는 것은 별개라서, 겉으로는 평소처럼 정중하게 하면서 속으로는 이 사람과는 가볍게 지내는 사이라고 정해 두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갑자기 차갑게 변해서 어색해질 일도 없고, 실망도 작아져요. 계속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좋은 사람이어도 되지만 무한정 내줄 필요는 없다고 답하고 싶어요. 친절함은 내 몫이고, 그 친절이 이용되지 않게 지키는 것도 내 몫이에요. 부탁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기준도 말씀드릴게요. 부탁이 오면 바로 대답하지 말고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요, 하고 시간을 벌어 보세요. 그 사이에 내 부담이 작은지, 기꺼이 할 수 있는지, 하고 나서 마음이 무겁지 않을지를 물어보면 돼요.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만 들어주고, 부담이 되는 건 이번엔 어렵겠어요, 하고 이유를 길게 대지 않고 짧게 거절하세요. 부탁을 들어준 뒤 다시 무관심해지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그것을 그 사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감정을 쓰는 양을 줄이면 돼요. 그리고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를 시험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작은 도움을 한번 요청해서 반응을 보면 이 관계에서 주고받음이 어떤 모양인지 확인할 수 있어요. 반응이 없더라도 그건 이 사람과의 관계 범위를 알려 주는 정보일 뿐, 내 가치와는 상관이 없어요. 거절한 뒤 상대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은 일리가 있어요. 필요 기반의 관계에서는 친절이 줄어드는 일이 실제로 생기기도 해요. 그렇다면 그 친절은 처음부터 부탁을 위한 것이었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고, 그때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벼운 인사 정도의 사이로 두셔도 충분해요. 반대로 거절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관계는 생각보다 단단한 거예요.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이라면 대화의 깊이를 조절하세요. 업무나 일상 이야기처럼 가벼운 주제만 나누고, 속마음이나 개인적인 사정은 덜 공유하면 필요 이상으로 이용될 여지도 줄고 서운함도 줄어요. 한 번은 담백하게 마음을 전해 볼 수도 있어요. 평소에도 안부를 나누면 부탁도 더 기쁘게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정도예요. 상대가 달라지려는 모습을 보이면 좋고, 변화가 없다면 거리를 현실에 맞게 두면 돼요. 마지막으로, 내 불편한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 주셨으면 해요. 반복되는 일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정당한 반응이에요. 이런 서운함이 곱씹혀 일상까지 지치게 한다면 짧게 적어 두고 덮어 보시고, 오래 이어지면 상담에서 이야기를 나눠 보셔도 좋아요. 이번 주에는 다음 부탁이 오면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요, 한 문장으로 시간을 벌어 보시길 응원할게요.651026.10.17
- 02코치 답변자기가 잘한 일에 끝없이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고, 기대만큼 칭찬이 안 돌아오면 금세 삐치거나 서운해하는 사람을 대하는 게 얼마나 영혼이 탈탈 털리고 지치는 일인지 온전히 느껴집니다. 대화의 목적이 '소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욕구 충족'이 되어버리니, 만나기 전부터 '이번엔 또 뭐라고 리액션을 해줘야 하나' 싶어 진이 빠지셨을 거예요. 사연자님이 결코 무뚝뚝하거나 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없는 칭찬을 매번 기계처럼 쥐어짜 내야 하는 관계는 누구라도 피곤하고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인정 욕구가 과한 사람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내 에너지를 지키는 대처 방법을 정리해 드립니다. 상대의 '서운함'은 상대가 처리해야 할 몫입니다 내가 비난이나 악의를 담아 말한 게 아니라 단지 밋밋하게 반응했을 뿐인데 상대가 기분 나빠한다면, 그것은 상대의 결핍에서 오는 감정일 뿐 사연자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내가 칭찬을 안 해줘서 저 사람이 기분이 상했나?" 하고 해명하거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상대는 사연자님을 '내 인정 욕구를 언제든 채워줘야 하는 사람'으로 길들이게 됩니다. 서운해하더라도 그냥 그 기분을 느끼도록 내버려두는 담담함이 필요합니다. 마음에 없는 영혼 없는 칭찬 대신 '사실 기반 리액션' 쓰기 굳이 속에도 없는 "우와 정말 대단하다!", "최고야!" 같은 평가형 칭찬을 짜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감정이나 평가를 뺀 단순 사실 확인이나 정보 질문으로 리액션을 대체해 보세요. "아, 이번에 그걸 새로 사셨군요." "그 일 고생해서 끝내셨네요. 얼마나 걸렸어요?"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수고 많으셨네요." 칭찬(평가)은 해주지 않되 '네 말을 들었다'는 최소한의 안부와 수긍만 보내면 영혼 없는 칭찬을 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기대치와 반응의 수준을 한 단계 낮춰 '균일하게' 유지하기 어떨 때는 열렬히 맞춰주다가 어떨 때는 반응이 없으면 상대는 서운함을 크게 느낍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리액션의 톤을 상시 '중립적이고 미지근한 상태'로 일정하게 고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도 "아, 저 사람은 원래 과한 칭찬보다는 담담하게 들어주는 성향이구나" 하고 학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과도한 기대나 확인 질문에는 '담백한 중립'으로 선 긋기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거야?"처럼 대놓고 반응을 강요하거나 물어볼 때는 당황해서 해명하지 마시고, 담백하게 답하세요. "아니에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르니까요. 고생하셨다고 생각해요." 하고 차분하게 넘기시면 됩니다. 모든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고 그들이 원하는 반응을 제공해 주는 것이 관계의 도의는 아닙니다. 사연자님이 느끼는 피로감은 "이제 마음에 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싶다"는 내 안의 건강한 신호입니다. 앞으로는 상대방의 인정 욕구를 채워주려 애쓰기보다, 사연자님의 편안함과 진실함을 최우선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613026.10.08
- 03코치 답변서운해서 말을 꺼냈는데 대화가 끝날 때쯤엔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되어 있고,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하면 역시 서운할 만했다 싶은 그 반복이 참 지치셨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친구의 행동보다 내 판단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게 가장 신경 쓰이신다는 말씀이 마음에 남아요. 평소엔 편하게 웃을 때도 많은 친구라 더 헷갈리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돼요. 질문하신 것부터 답해볼게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는 모습은 나르시시스트 성향에서도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요. 자존심이 상하는 걸 못 견디거나, 비난받는다고 느끼면 먼저 방어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도 같은 모습을 보이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 친구를 진단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라벨보다 중요한 건 이 대화 방식이 작성자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예요. 서운함을 꺼낼 때마다 내 마음은 사라지고 상대의 해명만 남는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그 관계에서 감정을 나누기가 어렵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럼 끝까지 설명할지, 어느 선에서 멈출지에 대해서는, 저는 설득을 목표로 삼지 않으시길 권해요.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게 만드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 그걸 목표로 하면 대화가 길어지고 지치기만 해요. 대신 내 느낌을 한 번 분명히 전하는 것까지를 내 몫으로 정하세요. 나는 그때 이런 점이 서운했어, 네 의도는 알겠어, 그래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것만 알아줘, 정도면 충분해요. 그다음에도 해명이 이어지면 우리 기억이 좀 다르네, 이 얘긴 여기까지만 하자, 하고 담담하게 멈추셔도 괜찮아요. 이건 지는 것도 동의하는 것도 아니에요. 내 판단을 믿는 연습도 함께 해보세요. 대화 직후 흔들릴 때 결론을 내리지 말고, 그날 내가 서운했던 점과 사실을 짧게 메모해두세요.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내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기준이 돼요. 기억이 서로 다른 일은 확신의 크기로 정답이 가려지지 않으니, 누가 맞는지 따지기보다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갈등이 아닌 평소엔 편한 친구이니, 이 친구와는 가벼운 대화와 즐거운 시간을 중심으로 지내고, 서운함이나 민감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과 나누는 식으로 관계의 결을 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이런 패턴이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고 작성자님을 계속 소진시킨다면 그때 거리를 더 두는 것도 선택지예요. 작성자님은 사람을 성급히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리는 분이에요. 그 균형감을 믿고, 내 마음을 한 번 분명히 전하는 데까지만 힘을 쓰시길 응원할게요.411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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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 나르시시스트 성향일까요?[9]
140026.10.27 - 05130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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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기가 피해자였다는 사람 앞에서 제 얘기는 사라집니다[7]
100026.10.29 - 07
헤어졌는데 아직도 상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답을 찾고 있어요[9]
181026.10.20 - 08
어머니의 기대와 제 선택을 구분하는 일이 어렵습니다[8]
141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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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는 친구는 왜 사과보다 변명부터 할까요?[21]
321026.10.15 - 05
타인의 감정보다 자신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나르시시스트 때문에 마음이 지치네요[17]
240026.10.16 - 06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는 사람은 왜 남의 성공을 깎아내릴까요?[13]
152026.10.29 - 07
내 성취가 그 사람의 공로가 되는 관계, 어떻게 해야 할까요?[10]
232226.10.14 - 08
성과는 자기 덕이고 문제는 제 탓이라는 상사, 제가 너무 꼬아서 듣나요?[11]
211026.10.24 - 09
제가 서운하다고 말하면 왜 마지막에는 늘 제가 사과할까요[10]
181026.10.23 - 10
헤어졌는데 아직도 상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답을 찾고 있어요[9]
18102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