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엄마
어릴 때는 명절이라고 하면 친가와 외가를 차례로 들러 온 일가친척이 북적이는 그 활기찬 분위기 자체가 참 좋았어요.
어릴 때라 다들 귀엽다고 예뻐해주셨으니까요 ㅎㅎ
거기다 용돈도 두둑히 받았으니 명절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들뜨곤 했죠. 부모님과 어른들은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셨지만, 친척들이 한상에 둘러앉아 하하호호 웃으며 밥을 먹는 그 한두 번의 순간만큼은 진짜 명절이라는 이름값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부모님도 나이가 드시고, 저와 사촌들, 친척들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명절은 빛을 바래기 시작하더라고요.
특히 저희 집은 아직도 제사를 지내는 집이었기에, 명절이 다가오면 피로도가 쌓이고 공기가 가라앉기 일쑤였어요.
제사라고 해서 거창하게 음식을 차리고 그런 건 아니라 육체적인 노동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컸어요.
반가움은 잠시뿐이고 모이기만 하면 어김없이 불편한 상황들이 반복되었거든요.
지나가듯 툭 던지는 말도 기분나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결혼은 언제 하냐", "취업은 어떻게 되냐"며 남의 사생활을 후벼 파는 잔소리들도 당연히 쉴 새 없이 오갔죠. 어른들끼리도 음식 준비나 집안일 문제로 팽팽하게 눈치를 보다가 사소한 일에 마음이 상해서 씩씩거리는 게 일쑤였어요.
눈치를 보다가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녹초가 되었고 집에서 오고갔던 말들 때문에 며칠씩 기분이 나빴고, 그렇게 서로에겐 상처와 감정 소비만 남는 명절을 보낸 지가 이미 오래였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의미 없는 스트레스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갉아먹을 수 없다 싶더라고요.
명절이 다가오면 짜증만 났으니까요.
그래서 올해는 용기를 내어 가족들에게 정식으로 제안을 건넸습니다.
우리 집 제사도 이제 완전히 내려놓고, 생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명절에 의무적으로 모이고 오고가는 것도 그만하자고요.
다른 가족들도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인지 막상 얘기를 꺼내자 흔쾌히 동의해 주었고, 드디어 저희 가족은 명절에 온전하게 쉴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올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긋지긋한 명절 눈치 게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아주 길지는 않아서 가까운 동남아 휴양지로 가족끼리 오붓하게 여행을 다녀왔어요.
드디어 명절에 해외여행가는 집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ㅎㅎ
'
어른들의 잔소리와 집안 대화로 눈치 보던 시간 대신, 따뜻한 나라에서 푸른 바다를 보며 푹 쉬는데 진짜 살아 숨 쉬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억지로 불편한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고, 가족들끼리 맛있는 것을 먹고 여유를 즐기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매년 상처만 남던 명절을 이렇게 바꾸고 나니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혹시 여러분도 매년 명절마다 지치고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나를 위한 선택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진은 이번에 다녀온 필리핀 보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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