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제 주변 친구들이나 직장 동기들은 다들 고만고만한 처지였습니다. 낡은 양복 한 벌로 땀 흘리며 사계절을 버티고 고된 퇴근길에 값싼 안주에 소주잔을 부딪치며 각자의 팍팍한 삶을 위로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때는 누구 집이 더 잘 사는지 어느 직장이 더 돈을 많이 주는지 그런 조건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똑같은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땀 흘려 일하면 언젠가는 번듯한 내 집도 마련하고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를 품고 그 힘든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뎌냈으니까요. 저 역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요령 피우지 않고 가족들 건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치열했던 현업에서 물러나 은퇴 시기를 맞이하고 보니 어느새 제 주변 사람들과 저의 삶의 격차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아득하게 벌어져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씁쓸하고 비참한 마음만 한가득 안고 중간에 몰래 빠져나온 적이 있습니다. 머리가 희끗해진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는데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누구는 일찌감치 사둔 변두리 땅이 재개발이 되어서 번듯한 상가 건물을 올렸다더라 누구는 겨울마다 아내와 해외로 골프 여행을 다니느라 바쁘다더라 하는 화려한 무용담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습니다.
다들 여유롭고 윤택한 노후를 마음껏 즐기고 있는데 그 틈에 덩그러니 끼어 있는 저는 매달 나가는 빠듯한 생활비와 갈수록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걱정해야 하는 초라한 늙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다 같이 맨주먹으로 시작했는데 나만 인생이라는 길고 긴 마라톤에서 철저하게 실패하고 낙오된 것 같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들었고 결국 화장실에 간다는 옹색한 핑계를 대고 도망치듯 모임 장소를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꼭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메신저의 지인들 프로필 사진만 보아도 하루에 수십 번씩 자존감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친구들의 사진첩을 넘겨보면 대기업에 당당하게 취업해서 사원증을 멘 자식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나 성대하고 화려한 호텔에서 올린 결혼식 사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옵니다. 그런 눈부신 사진들을 볼 때면 아직도 취업 준비로 마음고생을 하거나 팍팍한 월급쟁이 생활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모든 게 제가 부모로서 능력이 부족하고 가난해서 아이들에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지 못한 탓인 것만 같아 뼈저린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내 노후가 빈약하고 초라한 것도 서러운데 자식들의 삶까지 친구들의 잘나가는 자녀들과 여실히 비교가 되니 제 평생의 수고와 희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 밤마다 뜬눈으로 어두운 천장만 바라보며 괴로운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을 살면서 헛바람이 들어 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남들 쉴 때 편히 쉬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다 참아가며 정말 미련할 정도로 성실하게만 살아왔거든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나 빠른 재테크 같은 것에 밝지 못해서 그저 매달 들어오는 월급으로 꼬박꼬박 저축만 했던 제 우직함이 이제 와서는 너무나도 어리석고 융통성 없는 고집처럼 느껴져서 제 자신을 견딜 수 없이 원망하게 됩니다.
똑같은 시간을 살았는데 누구는 현명한 선택들로 여유로운 노후를 쟁취한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고 저는 늘 쳇바퀴 돌듯 제자리걸음만 하다가 늙고 병든 패배자로 남겨졌다는 이 지독한 박탈감이 하루 종일 제 머릿속을 유령처럼 맴돕니다. 열심히 정직하게만 살면 언젠가 다 보상받는다는 순진한 믿음으로 버텨온 제 지난날의 모든 땀방울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헛수고였던 것 같아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남몰래 눈시울을 붉히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가치가 밑바닥까지 떨어지다 보니 이 꼬여버린 마음이 고스란히 집안으로까지 이어져서 저를 끝까지 믿어주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마저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내가 동네 친구들과 모임에 다녀와서 무심코 누구네는 이번에 큰 차로 바꿨다더라 누구네 부부는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더라 하는 남의 집 이야기를 툭 던지기라도 하면 갑자기 제 안의 방어기제가 날카롭게 발동해서 불같이 화를 내고 맙니다. 나 들으라고 일부러 눈치 주는 거냐며 돈 많고 잘난 그 집에 가서 살지 왜 나같이 능력 없고 가난한 사람과 사느냐고 묻지도 않은 옹졸한 자격지심을 쏟아내 버리고 맙니다.
제 안의 깊은 열등감과 초라함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아내에게 억지 고집을 부리고 날 선 가시를 바짝 세우다 보니 집안 분위기는 늘 살얼음판이고 이제는 아내도 제 눈치를 보며 입을 굳게 닫아버려서 가장 편안해야 할 집 안에서조차 저는 철저하게 외롭고 고립된 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늙어가는 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이 비참한 기분은 더욱 짙어집니다. 이마에 깊게 패인 굵은 주름살과 듬성듬성 빠져버린 하얀 머리카락 그리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잔뜩 굽어버린 좁은 어깨를 보고 있으면 지갑만 얇아진 것이 아니라 제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쓸모없이 낡아버린 폐기물처럼 느껴집니다. 평생을 짊어지고 온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은 이 은퇴의 시기에는 저도 남들처럼 마음 편안하고 너그러운 웃음을 짓는 인자한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서글픈 현실은 남이 가진 돈과 화려한 여유를 끊임없이 부러워하며 겉으로는 아닌 척 속을 부글부글 끓이는 한심하고 옹졸한 늙은이일 뿐입니다. 남들과의 끊임없는 비교 지옥에서 벗어나 지금의 낡고 부족한 제 모습을 온전히 긍정하고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지만 평생을 경쟁과 눈치 속에서 살아온 탓인지 그게 마음처럼 전혀 되지를 않아 답답함에 제 가슴을 세게 내리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이 비참하고 지질한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고 위로라도 받고 싶지만 다 늙어서 남들 질투나 하고 자격지심에 빠져 산다는 매서운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아무에게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못나고 바보 같은 고민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 깊고 어두운 열등감의 수렁에서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길이 보이지 않아 이렇게 벼랑 끝에 선 절박한 심정으로 인생의 해답을 구명줄처럼 청해봅니다.
다들 고만고만했던 순수했던 과거를 지나 이제는 영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까득하게 벌어져 버린 현실의 뼈아픈 격차를 저는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을 수 있을까요.
돈이나 세상의 세속적인 잣대로 제 하나뿐인 인생의 가치를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고 비록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묵묵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제 지난날을 제 스스로가 진심으로 존중하며 평온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마음 챙김의 방법이 있다면 제발 그 길을 환하게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소중한 인생마저 다른 사람의 화려한 그림자만 쫓으며 억울함과 질투 속에서 허비하고 싶지 않은 한 못난 어른의 간절한 외침에 부디 따뜻하고 현명한 인생의 나침반을 건네주시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코치님 덕분에 고민이 해결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