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영화 한 편을 추천받았습니다. 취향이 저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번 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시작하고 십오 분 만에 제 취향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봤습니다. 친구가 나중에 어땠냐고 물을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이런 일이 유난히 많습니다. 누가 책을 추천하면 재미없어도 끝까지 읽습니다. 어떤 음식점이 좋다고 하면 별로여도 두 번째까지 가봅니다. 그래야 상대가 정성껏 추천한 걸 제대로 받아들인 사람이 되는 것 같거든요.
지난달에는 지인이 드라마 한 편을 꼭 보라고 했습니다. 첫 회가 취향에 맞지 않았는데도 주말 내내 봤습니다. 일요일 밤에는 재미없는 장면을 넘기면서도 이걸 왜 보는지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그만두면 다음에 지인을 만나서 할 말이 없을 것 같았어요.
결국 다 봤다고 연락했습니다. 상대는 '어땠어?'라고 물었고 저는 '나쁘지 않았어'라고 답했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할 만큼 나쁘진 않았지만, 정말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상대는 아 그렇구나 하고 끝냈어요. 제가 두 시간을 더 썼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로요.
생각해 보니 추천은 선물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좋아하는 걸 내게 나눠줬는데 거절하면 그 사람의 취향까지 거절하는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모든 취향이 맞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제 시간을 증명하는 데 씁니다.
상대의 호의를 감사히 여기면서도 내 취향은 아니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일로까지 고민하는 제가 피곤하지만, 남이 좋아하는 걸 끝까지 좋아해 줘야 한다는 마음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습니다. 다음엔 첫 회가 재미없으면 그냥 멈춰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