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연락처가 천 개가 넘어서 정리를 좀 했어요. 오래된 거래처나 폐업한 가게,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사람들까지 생각보다 정말 많더라고요. 지우다 보니 한때는 정말 친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보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남이 된 사이들이었죠.
처음엔 그냥 슥슥 지웠어요. 그런데 어떤 이름 하나에서 딱 멈추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동네에서 알던 분이었는데, 그냥 마주치면 인사하던 정도의 가벼운 사이였거든요. 마지막 통화가 8년 전인 걸 보고 '이제 연락할 일도 없고, 상대방도 내 번호 기억 못 하겠지' 싶었습니다.
근데 막상 삭제 버튼을 누르려니 망설여졌어요. 이걸 지우면 그 사람과 알고 지냈던 시간까지 통째로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고작 주소록일 뿐이고, 번호가 있다고 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결국 정리는 뒷전이고 몇몇 이름들을 검색해 봤어요. 어디 사는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 내 생활 속에 있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진도 없고 문자도 다 지워져서, 이제는 이 번호 말고는 남은 게 없더라고요.
제일 힘들었던 건 이미 돌아가신 지인의 번호였어요. 언젠가 다른 사람이 이 번호를 쓰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몇몇 이름 옆에 제가 기억하는 짧은 메모를 남겨뒀어요. 다 지우지는 못했지만, 번호 자체보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정리라는 게 버릴 걸 고르는 일이라는데, 전 사람 흔적을 버리는 게 참 서툰 것 같아요. 그렇다고 계속 놔두면 정작 필요한 연락처 찾기가 너무 힘들고요. 추억을 지키는 것과 과거에 매달리는 것의 차이는 뭘까요? 그냥 데이터 하나 지우는 건데, 왜 이렇게 큰 이별을 하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