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빌려준 우산을 친구가 돌려줬습니다. 멀쩡했어요. 손잡이도 그대로고 비닐도 씌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산을 펼쳐서 살펴봤습니다. 살이 휘어졌나, 천이 늘어났나.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도요.
사실 친구는 평소 물건을 험하게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그걸 가장 잘 알아요. 그런데 남에게 물건을 빌려주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생각합니다. 혹시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지, 망가지면 뭐라고 해야 할지.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 물건도 그렇습니다.
반대로 누가 제게 물건을 빌려주면 아주 조심해서 사용합니다. 쓰고 나서 닦아놓고 약속한 날보다 일찍 돌려줍니다. 그러니 저도 모르게 상대가 그만큼 신경 써주길 기대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죠.
지난주엔 동료가 충전기를 잠깐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주면서도 케이블이 꺾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할 뻔했어요. 결국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그런데 돌려받을 때까지 서랍을 자꾸 바라봤습니다. 동료가 잘못할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제가 불편한 상황을 미리 예상하는 거예요.
누구에게도 물건을 안 빌려주면 간단할 겁니다. 그런데 그건 또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가진 걸 잠깐 나눠주는 일이 그렇게 어렵나 싶어서요. 최근엔 필요하면 싫다고 말하는 연습을 해봤는데, 거절한 뒤에도 죄책감이 남았습니다.
문제는 우산이 아니겠죠. 혹시 물건이 손상되면 불편한 말을 해야 할까 봐 미리 긴장하는 게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부탁 앞에서 이렇게 손익과 갈등을 예상하는 습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물건 하나보다 사람 사이가 더 중요한 걸 아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반대로 행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