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쉬는 날이었습니다.
딱히 약속도 없었고 해야 할 일도 없어서 늦게 일어나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두 시간쯤 지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지더라고요.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내도 되나.’
그래서 청소기를 한번 돌렸습니다.
청소가 끝나고 다시 누웠는데 이번에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오늘 아무것도 한 게 없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합니다.
그날 저한테 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몇 시에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없었고, 오늘 무엇을 했는지 보고하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혼자 있으면서도 계속 누군가에게 제 하루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피곤했으니까 쉬어도 된다.
지난주에 바빴으니까 괜찮다.
청소라도 했으니까 완전히 시간을 버린 건 아니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계속 변명할 이유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한테 허락을 받고 있는 걸까.
회사에서는 맡은 일을 하면 되고, 가족이나 친구와 약속이 있으면 지키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런 의무가 없는 시간까지도 저는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운동을 하면 괜찮은 하루.
책을 읽으면 알찬 하루.
집안일을 하면 그래도 의미 있었던 하루.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 왠지 하루를 잘못 보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한 건 다른 사람이 그렇게 쉬는 걸 보면 아무 생각도 안 든다는 겁니다.
친구가 “오늘 하루 종일 누워 있었어”라고 하면 그냥 피곤했나 보다 합니다.
주말에 늦잠을 잤다고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제가 하면 갑자기 기준이 엄격해집니다.
너무 게으른 것 아닌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다른 사람들은 지금 뭔가 하고 있을 텐데.
생각해보니 저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이상한 습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순간에도 스스로 평가받을 준비를 하고 사는 것.
어쩌면 자존감이 낮다는 건 항상 자신을 싫어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쉬는 데 이유가 필요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명분이 필요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에는 변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하는 모습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 작은 실험을 하나 해보고 있습니다.
쉬는 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그냥 쉽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올라오면 일부러 이유를 만들지 않습니다.
피곤해서도 아니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도 아니고
내일부터 다시 잘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요.
막상 해보니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것보다 오히려 내 안에서 들리는 싫은 소리를 무시하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가끔은 자존감을 높이려고 뭔가를 더 잘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잘한 게 없는 날에도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놔두는 것.
아무 성과가 없는 하루를 보내고도 굳이 자기 자신에게 해명하지 않는 것.
저한테는 오히려 그게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혼자 있는데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으신가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계속
“그래도 나는 이건 했잖아.”
라고 변명하고 있는 순간이요.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허락해주는 휴식을 왜 자기 자신에게 허락하는 건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