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나 지금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ㅇㅇ이는 힘들면 더 웃는 것 같아." 라는 말이에요.
저는 습관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잘 웃습니다.
문제는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웃는다는 것이지요.
사회생활을 할 때는 저의 이런 습관이 도움이 참 많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언제나 밝은 사람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사는 것에 지쳐있는 것 같습니다.
음..
저의 인생을 돌아보면 큰 일이 있었던 순간들도 꽤 많이 있었어요.
집에 빚을 갚느라 청춘의 대부분의 시간을 흘려 보내기도 했고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이 영원히 떠나버린 일도 있었죠.
죽을 것 같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아직까지는 살고 있네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큰 일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모든 것이 지루하고 감흥이 없어요.
그냥 하루하루 숨이 붙어 있으니까 살아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출근을 하면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일도 그럭저럭 해냅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점이에요.
그렇다고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10분이면 해냈을 일도 지금은 30분은 걸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거의 매일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고 야근도 수시로 해야 하죠.
동료들이 눈치를 챌 정도는 아닌지 "요즘 일이 많은가봐, 힘들어서 어떡해" 라는 이야기만 듣고 있어요.
그런데 저 스스로는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딴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이 느려진 것도 아닌데,
평소보다 일의 속도가 두배, 세배 느려졌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지거든요.
집에 와서는 더 합니다.
저는 깔끔한 성격이라 항상 정리정돈이 잘 되는 편인데
요즘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이러다가 TV에 나오는 쓰레기집이 되는게 아닐까 걱정이 될 때쯤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어요.
김치까지 직접 담궈먹던 시절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라면과 아무 것도 바르지도, 굽지도 않은 맨 빵,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웁니다.
그냥 모든 것이 너무 귀찮고, 무기력해요.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도 예전에는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뭘 쓸까를 고민했는데
지금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 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이 곳에 오면 돌처럼 굳어버린 것 같은 제 마음을 토닥여주는 듯한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울증 자가점검을 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어요.
저는 제가 별로 우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냥 '감정이 없어졌다.' 라고만 생각했었지요.
극단적인 우울로 보이고 싶지도 않아서 아주 솔직하게 답변하려고 애를 썼는데
39점에 심한 우울상태로 나와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일상 유지가 어려울 만큼 우울감이 깊어져서 적극적인 도움과 돌봄이 필요한 상태라는 문장을 보니
엉망진창이 된 집을 한번 돌아보게 되네요,
그리고 우울 유형검사에서는 '자살 사고 4점 이상의 마음의 긴급 SOS'가 나왔고요.
이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울유형 검사 질문 중 많은 항목에 '매우 그렇다'를 체크하게 되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거든요.
제 가족 중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있어요.
그 때 영정 앞에서 나는 절대로 이런 식으로 죽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그냥 꾸역꾸역 살아갈 뿐이죠.
이 글을 예쁘고 바람직하게 마무리를 지으려면
이제는 나를 돌보기로 했다거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솔직히 저는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과를 보고 약간 놀라서 내가 우울증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엉망진창이 된 집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죠.
그냥 여전히 비슷하게 살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제가 왜 이렇게 느려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고
행동을 시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냥 제가 피곤하고 게을러져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자가점검 결과를 보고 나니 꼭 그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 건 아니에요,
점검을 했으니 이제부터 잘 관리해야겠다고 말하는 것도 솔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한 것 같거든요.
지금은 그냥 제가 이런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젠가는 상담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고요.
아직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자가점검을 계기로 나를 이대로 놓아두어도 괜찮은걸까? 에 대한 생각은 한번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아직 못 죽었으니까 그냥 산다.' 라는 마음도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마음인지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려고요.
저는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좀 어려운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울증 자가점검을 망설이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결과가 무서워서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한번 확인해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저는 결과를 보고도 아직까지 아무 것도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제는 제가 힘들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하기가 좀 어려워졌거든요.
언젠가는 지금의 제가 왜 이렇게 힘들어졌는지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