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2
우선 저는 우울증 약물 치료를 받고 있고, 약을 복용한지는 7개월이 되었습니다.
약을 복용하기 전에 저에게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남들보다 마음에 굳은살이 덜 박힌 채로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때는 작은 시험 성적 하나에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잠을 설쳤고,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며칠씩 속을 끓이며 지내고, 친구들과 작은 일 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쓰면서 보냈어요.
어릴 때부터 원래 스트레스도 좀 잘 받고, 불안도도 좀 높았는데 성인이 되어 진로를 고민하고 대학 생활을 거쳐 치열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는 그 불안감이 절정에 달했어요.
그리고 저는 좀 뭐든 느린 편이었어서,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에 잘 맞추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느낌 때문에 죄책감도 많이 들고, 스스로를 엄청 비하했죠.
그렇게 우울이란 감정은 어릴 때부터 저와 늘 붙어있었어요.
시작했을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버겁고 힘든 순간이었어요.
그곳에서 마주한 텃세와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제가 완전히 무너졌거든요.
우울 증세 뿐만 아니라 극심한 공황 증세도 있었고, 약을 먹어도 도무지 낫질 않는 만성 두통이 일상처럼 찾아왔어요.
병원에 가서 MRI검사를 해봐도 아무 이상이 없었죠.
그러면서 주변에서 조금씩 정신건강의학과를 권유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우울증이 심각해지면 신체화 증상으로 지독한 두통이 찾아오고, 정작 검사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병원 문을 두드리는 환자들도 많다고 해요. 저 역시 그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의사사 선생님과의 상담 과정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약은 올해 1월부터 데파킨정 300mg을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객관적인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우울증 자가검사와 유형 검사를 차분히 진행해 보았습니다.
먼저 우울증 검사 결과는 18점(우울 상태)이 나왔어요.
무기력과 외로움, 흥미 저하로 인해 일상 전반이 점점 버겁게 느껴지는 상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점수만 보면 결코 낮진 않지만, 만약 제가 이 치료 과정을 시작조차 하지 않은 채 혼자 끙끙 앓으며 방치했다면 아마 긴급 SOS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평균 대비 무려 7점이나 낮게 방어선을 지켜낸 것을 보면, 지금 제 상태는 완벽하진 않아도 분명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검사 문항 중 첫 문항인
"요즘 슬픈 기분인가" 를 봤을 때는 슬플 때와 담담할 때가 둘 다 있어서 잠시 답을 고르기 망설여지더라고요.
전혀 슬프지 않다
슬픈 편
항상 슬프다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다
이렇게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슬플 때도 있고 괜찮을 때도 있어서 답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우울증 유형 검사도 같이 해보게 됐어요.
결과는 '마음 환기가 필요하다' 라고 나왔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 마음의 에너지가 전반적으로 소진되어,
쨍하게 맑은 날도 폭풍우 치는 날도 아닌 약간의 구름이 낀 상태라는 해석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문장을 읽는데 아! 정말 이거다! 싶더라고요.
지금의 제 마음 풍경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거든요.
저도 지금 치료 중이고, 제 상태를 저도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 아직은 구름이 끼어있는 상태가 맞는 것 같아요.
반년 동안 꾸준히 약을 먹어본 결과, 제게 데파킨은 참 고마운 약입니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는 평온한 오후에도 불쑥불쑥 불안이 치솟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이 요동쳤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 날뛰던 감정의 낙차가 많이 잦아들었다고 해야하나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심전도 그래프가 제법 완만한 선을 유지하는 날이 생겼어요.
데파킨 외에 보조약도 같이 먹고 있어서 그런지 고질병을 넘어서 일상을 괴롭히던 두통도 많이 줄어들었고요.
물론 아쉬운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심각한 부작용은 비켜 갔지만, 컨디션이 저조하거나 피곤한 날이면 얼굴과 다리가 퉁퉁 붓는 부종이 찾아오곤 합니다... 붓기와는 거리가 먼 체질이었어서 이게 유일하게 약 복용 후 달라진 신체 변화네요.
현재 저는 병원에서 단순히 약 처방만 받아오진 않고, 전문가와 상담 치료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습니다.
상담 비용은 병원 진료비 정도로 나오는데요.
아마 병원이 아닌 상담소라면 비용이 훨씬 더 높을 거예요.
여기에 더해, 숨만 쉬며 운동이라곤 지독하게 멀리하던 제가 운동도 하고 있어요.
마음이 한없이 바닥을 칠 때 몸마저 가만히 방치해 두면 속도가 붙어 더 깊게 쳐진다는 걸 깨달았기에 매일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에너지를 채워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셀프 큐레이션에 나와있는대로
하루 10분 멍때리기 시간 갖기와 스마트폰 없이 창밖을 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꼭 가져보려고 해요.
잠자기 전에 오늘 좋았던 일을 떠올리는 것도 정말 좋은 방법 같아요. 여러가지가 아니더라도 사소하고 작은 일 하나라도 떠올려보려고요.
혹시 자가검사 버튼을 누를까 말까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다면, 저는 주저 말고 한 번쯤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막상 검사를 마치고 난 뒤 묘한 홀가분함과 안도감을 느꼈거든요.
과거에 우울이 바닥을 칠 때는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툭툭 떨어지는 날도 있었고 나중에는 울 기운조차 메말라버릴 정도였어요.
그리고 그때는 이런 검사를 해봤자 최악의 결과로 나올게 뻔하니 자가점검은 잘 해보지도 않았고요.
지금 검사를 해보니 제 생각보다 결과가 나쁘지 않아서 전 이 정도도 정말 많은 변화가 있다고 느낀 자가점검이었어요.
병원에 가고, 매일 약을 챙겨 먹으며 버텨온 지난 7개월의 시간이 참 보람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검사 결과로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작은 보상이라도 받은 기분이에요.
비록 아직은 저도 과도기라서 마음의 환기가 필요한 구름 낀 날이지만, 아직은 내가 마음의 환기가 필요한 걸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어요.
또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안주하지 않고 제 내면을 더 따뜻하게 보듬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꼭 당장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의 날씨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점검해 보는 작은 신호탄으로 이 검사를 활용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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