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일상에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없어졌어요

요즘 휴대폰 사진 정리하다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그냥 지나치면서도 예쁜 꽃 보이면 찍고, 맛집 가면 음식 사진 남기고, 퇴근길에 노을 예쁠 때도 자주 찍었거든요.  

근데 최근 몇 달 사진은 거의 다 영수증이랑 주차 위치, 일 때문에 찍어둔 것들이더라고요.

 

문득 생각해보니까 요즘은 뭔가 예쁘다거나 좋다 싶은 생각이 잘 안 드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매일 우울해서 울거나 특별히 힘든 일이 있는 건 아니에요.  

출근도 하고, 사람들하고 말도 하고, 농담하면 웃기도 하고, 할 일도 웬만하면 미루지 않고 하는 편이에요.  

겉으로 보면 예전이랑 크게 다를 게 없어요.

 

그런데 혼자 있을 때는 이상하게 아무 감흥이 없어요.  

예전에는 금요일이 되면 주말에 뭐 할까 생각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주말이 와도 딱히 기다리지도 않아요.  

어디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집에서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그냥 시간이 흘러가요.

 

얼마 전에는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식당 앞을 지나갔어요.  

한동안 메뉴까지 찾아보면서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막상 앞에 서니까 들어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배고픈 것도 아닌데 그냥 지나쳤어요.  

집에 와서 생각하니까 좀 씁쓸했어요.  

먹고 싶은 게 없어진 게 아니라, 먹어도 별로 즐거울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어요.

 

가끔은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아서 이런가 싶기도 해요.  

남들처럼 힘든 일 겪는 것도 아니고, 당장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지 모르겠어요.  

누가 고민 있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도 없고, 나 스스로도 왜 이런지 설명하기 어려워요.

 

예전에는 기분 안 좋은 날이 있어도 며칠 지나면 다시 괜찮아졌는데,  

요즘은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닌 상태가 계속되는 느낌이에요.  

싫어하는 마음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친구한테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뭔가 사고 싶은 마음도, 어디 떠나고 싶은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아요.

 

이게 그냥 나이 들면서 생기는 변화인지, 오래 쌓인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우울한 기분이 조금씩 깊어지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 행복해지고 싶다거나 그런 거창한 바람은 없어요.  

그냥 예전처럼 별거 아닌 일을 조금 기대하면서 살고 싶어요.  

퇴근하고 먹을 저녁이 기다려지고, 주말에 날씨 좋으면 어디라도 나가보고 싶고, 좋은 노래 나오면 제목 찾아서 저장해두던 그런 마음이요.

 

요즘 제일 아쉬운 건 즐거운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즐거운 일을 찾아보려는 마음조차 잘 안 생긴다는 점이에요.

 

혹시 저처럼 크게 슬프진 않은데 일상이 점점 무덤덤해지는 경험 해보신 분 계신가요?  

이런 상태가 오래 가면 상담이라도 한 번 받아보는 게 좋을지 고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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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익명2
    일상에서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없어진다는 건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처럼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더라도 자신을 탓하지 말고요. 거창한 행복을 찾으려 하기보다 오늘 조금 편안했던 순간 하나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 익명1
    크게 슬픈 일이 없어도 즐거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오래 이어진다면 마음의 피로가 쌓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특별히 힘든 일이 없는데 일상이 무덤덤하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당연하게 즐겼던 소소한 일들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다면 마음이 보내는 신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상에 지장이 크지 않더라도 상담을 통해 마음 상태를 한번 살펴보시면 좋겠어요. 
    예전처럼 소소한 일에도 설렘을 느끼는 날이 다시 찾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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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작성자님, 제 마음이 조금 먹먹해졌어요. 예전에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꽃 한 송이와 퇴근길의 노을, 주말에 먹고 싶은 음식 하나에도 마음이 머물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거네요.
    
    특히 좋아하는 마음보다 좋아할 마음이 먼저 사라지는 것 같다는 표현이 오래 남아요. 크게 슬픈 일도 없고, 일상도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내 안에서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게 얼마나 낯설고 허전할까요.
    
    그렇다고 작성자님이 편하게 살아서 그런 것도, 감사할 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마음이 지치는 데에는 반드시 누가 알아줄 만큼 큰 사건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오랫동안 쌓인 피로나 감정적인 소진, 우울감 등이 이렇게 무덤덤함으로 나타나기도 해요. 겉으로 일상을 잘 유지하고 웃을 수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괜찮은 것은 아니랍니다.
    
    저는 작성자님이 예전처럼 별것 아닌 일을 기대하며 살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 참 좋았어요. 행복해져야 한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저녁 메뉴가 기다려지고, 좋은 노래 한 곡에 마음이 머무는 평범한 기쁨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잖아요. 어쩌면 지금 작성자님에게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사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미처 살피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조금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당장은 즐거움을 억지로 찾아내려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예전처럼 좋아해야 한다고 자신을 재촉하기보다, 오늘 잠깐이라도 편안했던 순간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즐겁지 않아도 괜찮고, 아무런 감흥이 없어도 괜찮아요. 지금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도 자신을 돌보는 일이니까요.
    
    다만 이런 무덤덤함이 몇 달째 이어지고, 예전에 좋아하던 일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면 상담을 받아보셨으면 해요. 꼭 많이 힘들어야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마음이 보내는 작은 변화도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한 이유가 됩니다.
    
    작성자님,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만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의 나에게 맞는 기쁨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그 전에, 오랫동안 무덤덤하게 버텨온 마음이 왜 그런지 살펴볼 필요는 있겠지요.
    
    아무것도 특별히 불행하지 않은데 행복한 일도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들, 그 시간도 결코 가볍게 여길 필요는 없어요. 작성자님이 다시 작은 것들을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그 시작은 어쩌면 무언가를 억지로 좋아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조금 지쳐 있다는 사실을 다정하게 인정해 주는 데서부터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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