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나아졌다고 하니까 다들 이제 괜찮은 줄 아네요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지 반년 정도 됐어요.
처음보다 나아진 건 맞아요. 씻는 것도 예전보다 수월하고 밀린 빨래도 한 번에 몰아서 하지 않게 됐어요. 출근 전에 아무 이유 없이 울던 날도 줄었고요.

그래서 가족한테 요즘은 좀 낫다고 했는데, 그 말 이후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주말에 누워 있으면 이제 몸도 괜찮다면서 왜 또 그러냐고 해요.
모임을 한 번 빠지겠다고 하면 자꾸 피하면 안 된다고 하고요. 전에는 그냥 쉬라고 하던 일들이 다시 의지 문제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아니, 조금 낫다는 게 다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말을 입 밖으로 하면 제가 계속 아픈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못 하겠어요.

저도 좋아진 부분을 말하고 싶어요.
오늘은 밥을 차려 먹었다고, 퇴근하고 편의점 말고 마트에 갔다고요. 그런데 그 말을 하면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요. 다시 힘든 날이 오면 제가 기대를 저버린 사람이 된 것 같고요.

가족이 제 상태를 매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건 이해해요. 저도 아침에 괜찮다가 저녁에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제 다 나았네, 이 말은 아직 부담스러워요.
다음 진료 때 가족에게 설명하는 문제도 이야기해 보려고요. 좋아졌다는 말을 숨기지 않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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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익명1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모든 일상을 예전처럼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죠. 회복하는 과정에는 괜찮은 날도 있고 유독 힘든 날도 있는 것 같아요.
    가족들도 좋아진 모습만 보고 기대가 커졌을 수 있지만, 회복 속도는 누구에게나 다르잖아요. 힘든 날에는 쉬어도 괜찮고, 좋아진 만큼만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꾸준히 치료받으며 노력해 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에게도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천천히 전해 보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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