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는 않은데, 저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지난달에 휴대폰을 정리하다가 유효기간이 지난 케이크 쿠폰을 발견했습니다. 올해 제 생일에 친구가 보내준 거였어요. 평소 제가 정말 좋아하던 가게였고, 친구도 제가 거기 케이크를 좋아하는 걸 알고 일부러 보내준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한 번도 쓰지 못한 채 기간이 끝나버렸네요.

 

사실 처음부터 잊어버렸던 건 아닙니다. 유효기간이 다가온다는 알림도 받았고, 이번 주말에는 꼭 나가서 사 와야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말이 되면 씻고 옷을 갈아입고 가게까지 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집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에요. 그저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다가, 배가 고프면 대충 끼니를 때우고, 다시 누워 있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났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케이크 하나 사러 가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랬을까 싶었겠지만, 요즘은 그런 사소한 일조차 자꾸 미루게 됩니다. 더 이상한 건 남의 일은 또 잘한다는 점입니다. 회사에서는 맡은 일도 제때 처리하고, 누군가 무엇을 부탁하면 웬만하면 바로 해줍니다. 며칠 전에는 동료가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다고 해서, 퇴근길에 일부러 다른 동네까지 들러서 전해주고 왔습니다. 그런 일들은 별로 어렵지 않거든요.

 

그런데 정작 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게 있어서 배달 앱을 켰다가도 한참 동안 메뉴만 보다가 그냥 닫아버립니다. 주말에 영화나 볼까 싶어 예매 화면까지 들어갔다가도, 시간을 고르는 과정이 귀찮아서 그만둡니다. 지난주에는 미용실 예약을 세 번이나 미뤘습니다. 돈이 아까운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얼마 전 그 친구가 케이크는 맛있게 먹었냐고 물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맛있게 먹었다고 대답해 버렸어요. 굳이 유효기간이 지나서 못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서운해할까 봐 그랬다기보다, 왜 그걸 못 썼냐고 물어본다면 저조차 설명할 말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날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올해는 저 자신을 위해 일부러 무언가를 했던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사고, 밥도 먹고, 출근도 하고, 사람도 만납니다.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 말고, 제가 정말 좋아서 선택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요. 예전에는 주말에 혼자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별다른 목적 없이 서점이나 마트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을 하자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피곤함이 밀려옵니다.

 

그렇다고 매일 슬프거나 울고 싶은 기분인 건 아닙니다. 회사에서 웃을 일이 있으면 웃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함께 웃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 그냥 게을러진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단순한 게으름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키거나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한 일은 어떻게든 해내는데, 저 혼자 좋자고 하는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되어도 별로 아쉽지가 않아요. 케이크 쿠폰이 만료되었을 때도 아깝다는 생각보다, 이제 더 이상 그 가게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 점이 조금 무서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것들이 싫어진 게 아니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요즘은 누가 주말에 뭐 했냐고 물으면 그냥 집에서 쉬었다고 대답합니다. 사실 쉬었다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혹시 우울증을 겪으신 분들 중에도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슬프지도 않고 특별히 힘든 일도 없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도 우울증과 관련이 있을까요? 일상생활은 멀쩡하게 하고 있으니 병원에 가볼 정도는 아닌 것 같다가도, 이런 상태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그저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이곳에 조심스럽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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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울증을 주제로 4.8만명이 이야기 중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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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슬픔보다 먼저 찾아오는 무기력함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느껴집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일도 잘하고, 사람들과 웃으며 지내니 별문제 없어 보이겠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 할 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변화인 것 같아요.
    
    우리는 흔히 우울하면 슬프고 눈물이 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좋아하던 것에 흥미가 줄어들고,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것도 우울감과 관련이 있을 수 있어요. 몇 달째 이런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면 단순히 게으르다고 자책하기보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기관에서 현재 마음 상태를 한번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다고 자신을 탓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때가 아니라, 왜 나를 위한 일 앞에서 이렇게 지치는지 자신을 조금 더 다정하게 들여다봐야 할 때일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은 거창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좋아하는 케이크를 꼭 사러 가지 못하더라도, 그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편안하게 쉬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기꺼이 움직이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움직일 힘이 나지 않는 마음, 이제는 그 마음에도 누군가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누군가가 오늘은 바로 자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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