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습관인데 저한테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집에 들어오면 신발장에 신발을 넣지 않고 현관에 운동화 한 켤레를 꼭 꺼내놓습니다.
그것도 바로 신을 수 있게 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고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현관이 지저분한 걸 싫어해서 신발은 바로 정리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작년 겨울에 있었던 일 이후로 이런 습관이 생겼습니다.
작년 12월 새벽에 저희 아파트에서 화재가 났습니다.
아래층에서 불이 났는데 당시 저희 가족은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화재경보가 울려도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가끔 오작동으로 경보가 울린 적이 있어서 그날도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조금 뒤에 복도에서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가 먼저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어봤는데 연기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이를 깨우고 겉옷을 챙기고 휴대폰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평소 같으면 금방 찾을 물건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신발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 운동화가 신발장 아래쪽에 있었는데 급하게 꺼내려니 다른 신발이 걸리더라고요.
평소에는 몇 초면 될 일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그 몇 초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저희 가족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습니다.
소방관분들이 도착해서 화재도 진압됐고 저희 집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제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밤에 잠들기가 어려웠습니다.
불을 끄고 누우면 복도에서 들리던 발소리와 화재경보 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자다가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들려도 벌떡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새벽에 세탁기 종료 알림이 울렸는데 순간적으로 침대에서 뛰어내린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비슷한 반응이 계속됐습니다.
특히 현관문을 닫을 때 나는 소리가 싫어졌습니다.
아파트 복도에 있는 방화문이 닫히면서 쿵 하는 소리가 나면 저도 모르게 몸이 굳습니다.
머리로는 아무 일도 없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현관에 운동화를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운동화가 제자리에 없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합니다.
한번은 아내가 현관 청소를 하면서 제 운동화를 신발장에 넣어놨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운동화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 순간 괜히 짜증이 났습니다.
아내한테 신발 왜 치웠냐고 조금 날카롭게 물었습니다.
아내는 현관이 지저분해서 넣어놓은 것뿐인데 왜 화를 내느냐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제야 제가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냈다는 걸 알았습니다.
미안하다고 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다시 운동화를 꺼내놨습니다.
안 그러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거든요.
며칠 전에는 아이가 제 운동화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아빠는 왜 신발을 맨날 이렇게 놔둬?"
그냥 빨리 신으려고 그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자기도 그렇게 해놓으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마음이 좀 이상했습니다.
아이는 그날 일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많이 놀랐지만 지금은 평소처럼 잘 지내고 있고, 화재 이야기가 나와도 저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제가 계속 이런 행동을 하면서 아이한테도 불안감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실 운동화뿐만이 아닙니다.
요즘은 외출해서 숙소에 들어가면 비상구 위치부터 확인합니다.
호텔이나 펜션에 가면 객실 문을 열고 복도를 한번 걸어보기도 합니다.
그 정도는 안전을 위해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확인을 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얼마 전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비상구 위치를 확인하고 소화기가 어디 있는지까지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밤에 누우니까 다시 걱정이 되더라고요.
혹시 화재경보를 못 들으면 어떡하지.
아이를 깨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어떡하지.
결국 잠들기 전에 현관 쪽을 두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아내는 이제 그만하고 자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날 화재를 겪은 가족이나 이웃들도 지금은 대부분 평범하게 지내고 있거든요.
가끔 당시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큰일 날 뻔했다면서 웃으며 지나갑니다.
저도 그 자리에선 같이 웃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는 그날 일을 다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아이 신발을 꺼내던 순간이 자꾸 떠오릅니다.
왜 하필 그 장면만 그렇게 선명하게 기억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있었던 다른 일은 순서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신발장 문을 열고 급하게 운동화를 꺼내던 장면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제는 실제로 불이 날까 봐 무섭다기보다 그때처럼 제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고 자꾸 확인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한다고 해서 마음이 완전히 편해지는 것도 아니네요.
얼마 전에는 아내가 이제 집도 안전하고 다 끝난 일인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그날 일이 이미 끝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그날 새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런 증상이 PTSD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을까요?
아직 정확한 진단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는 아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그날 일이 떠오르거나 특정 소리에 지나치게 놀라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나요?
아니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더라도 전문적인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을까요?
가끔은 저도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운동화를 현관에 꺼내놓는다고 누가 크게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비상구를 확인하는 것도 나쁜 행동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일들을 이제는 불안해서 해야 한다는 게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언젠가는 현관에 운동화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냥 집에 돌아오면 내일 출근할 생각이나 하고, 주말에 뭐 할지 고민하던 예전의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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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코치 답변작성자님, 전역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비슷한 말투와 표정 앞에서 몸이 먼저 굳는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혼나지 않을지 몰라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고, 가만히 있어도 혼나고 말을 해도 혼나던 상황을 견뎌야 하셨잖아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실수조차 작성자님에게는 두려움의 이유가 되었으니, 당시 얼마나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을지 느껴집니다. 특히 마음이 아픈 건 이제는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도 비슷한 사람을 마주하면 다시 그때처럼 눈치를 보게 된다는 점이에요. 머리로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이 먼저 긴장하는 건, 작성자님이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어서라기보다 그때 겪었던 긴장과 두려움이 비슷한 상황에서 되살아나는 반응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자신이 억울하게 느껴지는 마음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고 계급의 차이까지 있었던 상황에서 참고 견딘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당시의 나에게 지금과 같은 용기와 선택을 요구하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그때는 그때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며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경계심이 생긴다고 해서 작성자님이 그 사람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 반응을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긴장하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확인해 가는 것일 거예요. 순간적으로 긴장하더라도 자신을 나무라지 말고, 상대방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볼 여유를 조금씩 되찾아 가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흘렀다고 모든 기억이 같은 속도로 희미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일상에서 이런 반응이 반복되어 힘들다면 상담을 통해 당시의 경험과 지금의 반응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작성자님, 그때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그때의 삶에 계속 갇혀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미 그곳을 벗어나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계시고, 이제는 왜 이런 반응이 생기는지 이해하고 싶다고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잠시 움츠러드는 순간이 있더라도, 이제는 누구의 눈치를 보며 잘못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80026.10.19
- 02코치 답변어린 시절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이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때 얼마나 무섭고 막막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른에게는 잠깐의 꾸중이었을지 몰라도, 어린 학생에게는 교실 전체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순간이었을 테니까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지고,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혹시라도 변명한다고 생각하셔서 더 혼내실까 봐,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무서운 마음과 창피한 마음이 뒤섞여 어디에도 숨고 싶었을 것 같고요. 더 마음 아픈 건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설명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억울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도 있었을 텐데, 상대는 선생님이고 자신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겠지요. 무슨 말을 해도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니 억울한 마음은 그대로 남았을 테니까요.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꾹 눌러 두었던 감정은 누구에게도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남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그때 가장 무서웠던 건 큰소리 자체만이 아니라, 언제 목소리가 더 커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그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느꼈던 막막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고, 말투를 살피고, 어떻게 해야 더 혼나지 않을지 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눈치를 보셨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 화를 내는 상황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판단하기도 전에 먼저 상대방의 기분부터 살피게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누군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면 몸이 움츠러들고 말문이 막힌다는 말씀에서, 그때 배운 두려움이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지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끼리 다투는 상황인데도 괜히 긴장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인데도 혹시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는 않을까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겠지요. 상대방은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말하고 있을 뿐인데, 작성자님은 혹시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부터 돌아보게 되고요. 그렇게 순간적으로 위축되고 난 뒤에는 또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른인데 왜 이 정도에도 긴장하는지, 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는지, 지나고 나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 순간에는 그러지 못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반응을 지금의 자신이 부족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어린 시절 큰소리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긴장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마음에 남는 것은, 작성자님이 그 시절의 일을 떠올리면서도 '그렇게까지 혼날 일이었나'라고 생각하신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눈으로 돌아보니 당시의 자신이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고, 어린 자신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실 것 같아요. 그때는 선생님의 꾸중이 세상의 전부처럼 크게 느껴졌겠지만, 사실 어린 학생이 실수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렇게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때의 작성자님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필요했고, 잘못이 있더라도 차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른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왜 대답하지 못하느냐고 다그치기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큰소리 앞에서 움츠러드는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때의 어린 자신은 무서운 상황을 견디느라 애썼고, 지금의 자신은 그때와 다른 상황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긴장을 이해해 보려 애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오래된 기억이라고 해서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작았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두려움과 억울함을 이제라도 자신의 마음으로 인정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커진다고 해서 무조건 고개를 숙이거나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장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더라도 괜찮고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되고, 상대방이 진정된 뒤에 이야기해도 됩니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반응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경험이 앞으로의 모든 관계에서 작성자님의 목소리를 대신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이 지금도 불쑥 마음을 흔든다는 사실이 속상하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을 떠올리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기보다는,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을 삼켰는지 먼저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어린 시절의 작성자님에게 필요했던 이해와 다정함을 이제는 스스로에게도 조금씩 건네주셨으면 좋겠습니다.110026.10.16
- 03코치 답변작성자님께는 권고사직이라는 결과 자체보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을 정리해야 했던 당시의 당혹감과 상실감이 더 깊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일상은 회복되었어도 꿈에서 비슷한 상황을 다시 겪고 나면 그때의 감정까지 되살아나니,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우셨을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꼭 같은 속도로 따라오지는 않더라고요. 특히 충분히 설명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지 못한 채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때 내가 부족했던 걸까', '다르게 행동했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질문이 남을 수 있어요. 하지만 권고사직을 겪었다는 사실이 작성자님의 능력이나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꾼 날에는 억지로 잊으려 애쓰기보다 '지금 내가 힘든 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지, 그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은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셨으면 해요. 오늘의 마음까지 그때의 평가에 맡길 필요는 없으니까요. 작성자님은 지나간 일을 붙잡고 싶은 게 아니라, 이제는 그 기억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으신 거겠지요. 그러니 아직 마음에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해서 자신을 탓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아팠던 일은 잊는 것만이 회복은 아니니까요. 언젠가는 그 일을 떠올려도 더 이상 자신의 잘못을 찾느라 마음을 소모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오늘 꿈 때문에 마음이 무거우셨다면, 그만큼 힘들었던 자신을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그때의 일은 작성자님의 인생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지, 작성자님이라는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130026.10.16
- 01코치 답변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많이 공감됐습니다. 낮에는 괜찮다가 조용히 누우면 낮 동안 묻어두었던 생각들이 하나씩 올라오더라고요. 특히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이미 지나간 일인 걸 알면서도 쉽게 멈춰지지 않는 것 같아요. 생각을 억지로 없애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질 때도 있지요. 그래서 꼭 생각을 끝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아, 지금 내 마음이 그 일을 다시 꺼내고 있구나’ 하고 한발 떨어져 바라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끔 그런 밤이 있다고 해서 아직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거나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음이라는 게 낮에는 바쁘게 지나가다가 밤이 되어서야 조용히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니까요. 다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 수면을 많이 방해하거나 일상까지 힘들게 한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오늘 밤만큼은 지나간 일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 일은 그때의 나에게 맡겨두자” 하고 조금 편안하게 쉬셨으면 좋겠습니다.391026.10.05
- 02코치 답변 **“머리로는 끝난 일인데 몸이 먼저 그때로 돌아가는 느낌”**이 참 잘 느껴졌습니다. 이건 스스로 예민해서 생긴 반응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복적으로 혼나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하고, 언제 불려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지내다 보면 뇌와 몸이 그 장소·길·말투 같은 단서와 당시의 긴장감을 연결해서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안전한 장소라는 걸 알아도 비슷한 자극을 만나면 몸이 먼저 경계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기억은 사라졌는데 몸의 경보장치는 아직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셈이지요. 특히 그곳을 피하면 당장은 편안해지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장소=위험한 곳’이라는 연결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 길을 다니며 견딜 필요도 없습니다. 충분히 안정된 상태에서 짧게 지나가 보면서 *“지금 나는 그 직장이 아니라 현재에 있고, 이제 그 사람의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이 계속 심해져서 장소나 말투를 광범위하게 피하게 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불안·긴장이 반복된다면 상담이나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보셔도 좋겠습니다. 꼭 PTSD라는 진단을 붙여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글쓴님이 겪었던 일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작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반복적으로 사람 앞에서 위축되고 두려워지게 만드는 경험은 분명 마음과 몸에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미 그 직장을 떠났고, 그 상사와의 관계도 끝났습니다. 이제는 몸에게도 그 사실을 천천히 알려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는 많이 긴장하고 무서웠지만, 지금의 나는 그곳을 떠났고 이제 안전하다.” 그 말을 서두르지 않고 여러 번 들려주세요.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몸이 현재를 다시 배워가는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요.291026.10.03
- 03코치 답변직접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오래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스스로 이상하게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크게 다치는 일을 겪으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그 충격이 마음에 강하게 남을 수 있습니다. 특히 말씀하신 것처럼 평소에는 괜찮다가 지게차를 보거나 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먼저 긴장하고, 당시 일이 떠오르는 것은 그 사고와 지게차라는 자극이 서로 연결되어 기억되었기 때문일 수 있어요. 머리로는 ‘지금은 다른 장소, 다른 상황’이라고 알고 있어도 몸의 경계 반응은 생각보다 먼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당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하고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당시 일이 큰 충격이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회피가 심해지거나 일상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로 불안과 긴장이 반복된다면, PTSD라고 스스로 진단하기보다는 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현재의 반응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잊는다는 것이 꼭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느 날 지게차를 보고도 ‘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지나칠 수 있게 되는 것, 기억은 남아 있어도 더 이상 지금의 나를 위협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 어쩌면 진짜 회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오느라 애쓰셨을 마음에도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싶어요.271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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