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와 비슷한 사람만 봐도 하루가 무너지는 제가 답답해요

학창 시절에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던 일이 있어요. 지금은 학교도 다르고 생활 반경도 달라서 그 사람들을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도 저는 아직 비슷한 얼굴이나 말투에 너무 쉽게 흔들려요.

지난주 수업에서 조별 활동을 했는데, 같은 조 한 분의 웃는 소리가 예전에 저를 괴롭히던 사람과 조금 비슷했어요. 그분은 저한테 불친절하게 행동한 적도 없고 오히려 자료를 먼저 보내 주셨는데, 저는 자꾸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말하면 속으로 비웃을 것 같고, 단체 대화방에서 제 메시지 다음에 답이 늦어지면 따로 제 얘기를 하고 있을 것 같았어요.

이 생각이 그분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더 많이 웃고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굴었어요. 그러고 집에 왔는데 너무 지쳐서 씻지도 못하고 누워 있었어요.

예전 일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웠던 장면만 생각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웃으면서 넘겼던 순간들이 계속 생각나요. 그 자리에서 싫다고 했으면 달라졌을까, 선생님께 더 정확하게 말했으면 됐을까, 왜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을까 하고요. 당시에는 하루만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저는 그때의 저를 계속 심문하고 있어요.

친한 친구 한 명에게 이야기한 적은 있어요. 친구가 화도 내 주고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해 줬는데, 집에 와서는 괜히 무거운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에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위로받고도 제가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서 편하지 않았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제는 다르게 지내고 싶어요. 그런데 머리로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 몸은 이미 조심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전에 제가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데만 집중하게 돼요.

게시판에 쓰면서도 이 정도 일을 너무 크게 말하는 건 아닐까 문장을 자꾸 고치게 되네요.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것부터 이렇게 어렵다면 상담에서도 계속 괜찮다고만 하다가 나올 것 같아요. 이번에는 제 이야기를 중간에 축소하지 않고 끝까지 해 보고 싶어서 적어 봅니다.

댓글4
  • 익명2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지내셨을지 느껴졌어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다시 긴장하게 되는 건 그때의 상처가 아직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특히 당시의 자신을 탓하며 계속 되짚어보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네요. 그때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드셨을 텐데, 지금 와서 그때의 나를 탓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괴롭힘을 당한 건 작성자님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상담에서도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를 완벽하게 꺼내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처럼 글로 적어 간 내용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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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니
    마음속 깊은 상처를 꺼내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을지 감히 헤아려봅니다. 과거의 아픔이 현재의 신체 반응과 대인관계로 이어져 매일 참 긴장되고 지치셨을 것 같아요.
    ​그때의 내가 상황을 견디기 위해 선택했던 '아무렇지 않은 척'은 당시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어막이었습니다. 결코 스스로를 심문하고 자책할 일이 아니며, 잘못은 오롯이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 앞에서도 나를 지키려고 몸이 먼저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의 반응입니다.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힘들었던 나를 다정하게 보듬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야기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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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작성자님, 학창 시절의 괴롭힘이 끝났고 생활 환경도 달라졌는데, 비슷한 웃음소리나 말투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린다면 스스로도 얼마나 답답하고 지치실까요. 특히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경계하게 되고,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웃고 친절하게 행동해야 했다니요.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조별 활동이었을지 몰라도 작성자님에게는 하루를 버텨 내는 것만큼이나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성자님이 아직도 흔들리는 것은 지난 일을 극복할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과거에 겪었던 상처가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당시의 경험이 아팠기 때문일 수 있어요. 머리로는 지금 만나는 사람이 그때의 가해자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아도 마음과 몸이 먼저 경계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런 자신을 또다시 탓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건, 당시 괴롭힘을 당한 것도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그때의 자신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때 싫다고 말했더라면, 선생님께 더 정확하게 알렸더라면 달라졌을까 하고요.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던 시절의 작성자님은 지금처럼 지나간 일을 차분하게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거예요. 그저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견뎌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것도, 제대로 맞서지 못했던 것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나름의 방법이었을 거예요. 그때의 작성자님에게 지금의 기준으로 책임을 묻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친구에게 위로받고도 괜히 무거운 이야기를 했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는 대목에서도 작성자님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살피며 지내는지 느껴졌어요. 하지만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해서 상대방의 하루를 망치는 것은 아닙니다. 작성자님도 누군가에게 위로받아도 되는 사람이고, 아픈 이야기를 꺼낸 뒤까지 상대방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억지로 편안해지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경계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 알아 가는 중이야' 하고 잠시 멈춰 보세요.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더 많이 웃거나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 어색해도 괜찮고, 상대의 반응을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작성자님이 편안해지는 속도대로 관계를 맺어 가셔도 돼요.
    
    상담을 받게 되신다면 오늘 적어 주신 글을 그대로 보여 주셔도 좋겠습니다. 말로 꺼내기 어려우면 글로 시작해도 되고,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복잡해져 잠시 멈춰도 괜찮아요. 상담은 괜찮은 척을 잘하는 자리가 아니라, 괜찮지 않은 마음도 안전하게 꺼내 놓을 수 있는 자리니까요.
    
    작성자님, 과거의 일을 잊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의 자신을 더 이상 탓하지 않고, 지금의 자신까지 괴롭히지 않는 것부터 천천히 시작하셔도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혼자 감당해 온 마음이니 이제는 자신에게 조금 덜 엄격하셨으면 합니다. 작성자님이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는 작성자님 자신부터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익명1
    그동안 혼자 감당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지 글에서 느껴져요.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을 축소하지 않고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편안해지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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