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저는 출근하는 것이 참 즐거웠어요.
이 일이 적성에 잘 맞았거든요.
일하는 것도 재밌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
일단 취업을 하기 전 연구실에 있을 때는 주7일 모두 연구실에 나가 있어야 했지만
주말은 꼬박꼬박 쉴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연차가 쌓이면서 일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기 시작했죠.
그래도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거나 금요일이면 기분이 좋았거든요.
집에 가서 쉬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고 주말이 오면 그 시간을 만끽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해요.
퇴근을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요.
퇴근을 하면서도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부터 들고
잠이 들기 직전에는 몇 시간 뒤에 다시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울해져요.
아침이 오는게 너무 싫고 무섭고 자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마지막으로 제대로 쉰게 언제인지도 잘 생각나지 않네요.
지금은 평일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가끔은 철야를 하기도 해요.
숨막히게 조여오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바빠도 버틸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아무리 바빠도 365일 일하는건 아니니까요.
중간중간 쉬어가는 날도 있으니 어떻게든 지나갈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업무가 쌓이는 속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저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쳤습니다.
저는 제 일을 좋아했고 제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너무 많이 지친 것 같아요.
제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무기력감인 것 같습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뒤에도, 주말에도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가기 들지를 않아요.
사람 만나는 것도 너무 귀찮고, 취미생활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밥 먹기도 귀찮아서 굶거나 맨 빵 하나 겨우 넘기는 날도 많고
씻는 것도 귀찮지만 어쩔 수 없어서 겨우 씻어요.
몸도 실시간으로 나빠지는 것이 느껴져요.
일을 하고 있으면 전신의 관절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프고
요즘은 흉통도 너무 자주 있어요.
턱까지 통증이 퍼져서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업무 효율도 너무 떨어집니다.
예전에는 한번도 실수하지 않았던 작업인데도
지금은 틀리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해야 하다보니 시간이 두배, 세배는 더 걸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감정을 다잡기가 어렵다는 점이에요.
별 일 아닌 일로도 짜증이 나고 적개심이 생기고요,
별 것 아닌 말에도 예민해지고 그냥 넘기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저는 원래 회사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동안 참고 참으며 분출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전부 내 안에 쌓여버린 것만 같아요.
요즘은 제가 제 자신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을 때가 많아서
화가 나면 화장실 칸 같은 좁은 공간을 찾아서 숨어버립니다.
그래야만 제가 사회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직장 상사, 팀원들, 클라이언트까지 있는 자리에서 책상을 엎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을 때에요.
아직도 그 순간은 잊기가 힘든데,
충동을 억누르려서 볼펜을 쥐고 있던 손을 꽉 쥐는 바람에 볼펜이 부러져서 손까지 다쳤거든요.
다행히 누구에게도 제 감정을 들키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제 모습이 너무 싫어서 사람 만나는 것도 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10년만에 잠시 귀국한 친한 친구를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피했는데 그게 너무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만날 자신이 없었어요.
행복하지 않은데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것도 힘들고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 것 같은 것도 힘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무너지고 있는 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듭니다.
번아웃이 왔다고 느꼈을 때, 극복하기 위해 이것저것 참 많이 해보았어요.
운동도 해보고, 억지로 사람들을 만나며 기분 전환을 해보기도 하고요.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기분을 달래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딱히 효과를 보지는 못한 것 같아요.
음식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운동을 하면 피로감만 더 쌓이는 것 같았거든요.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에서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어요.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어요.
퇴근하고 돌아오면 억지로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몸이 피곤하면 그냥 쉬고, 사람을 만나기 싫으면 만나지 않기로 했어요.
폰도 꺼두기 시작했고요.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분석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려고 노력 중이에요.
업무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외에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들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완전히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늦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한번 쯤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누구나 일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것이 적정한 선을 넘어서
퇴근을 해도 불안하고 좋아하는 일에도 감흥이 없어지고 사람을 피하고 몸까지 아프게 된다면
무심코 '내가 좀 힘든가보다' 하고 넘어가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금은 좀 지친 것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줄 필요도 있는 것 같고요.
무너진 뒤에 쉬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기 전에 쉬는 것도 나를 지키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