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영업을 하다 번아웃이 왔어요.
제가 사업자 대표로 등록된 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가족과 운영을 함께 하고 있어서 사장이나 다름없는 위치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 혼자 일하는게 아니니까 조금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현실은 맵네요.
자영업이라는 게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게 문을 닫는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매출부터 거래처, 손님 응대, 크고 작은 결정까지 계속 신경 써야 할 일이 생겨요. 그렇다고 최근에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장사가 갑자기 망했다거나 누가 큰 문제를 일으켰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요. 아, 물론 일명 진상 손님은 간간히 등장하긴 하죠.. 말 잘 안 듣는 직원도 있고..
그것 외에는 그냥 하루하루 똑같이 가게에 나가고, 일하고,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어요. 자동화 단축 루틴처럼 그렇게 계속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가장 큰 번아웃 증상은 일상이나 개인적인 일에선 별로 안 좋은 일이 없는데도 그냥 집에서도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쉬는 날이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어디 구경도 가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쉬는 날에도 집에만 있고 싶더라고요. 쉬는 날이 별로 없어서 꿀맛같은 휴일인데도 밖에 나가기가 싫었어요.
특히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하고 나면 말 한마디 하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지쳐서 필요한 말 외에는 말을 잘 안하게 됩니다.
일터에 나가도 한가한 시간에도 그냥 멍...하니 있어요. 그러다가 매출이나 가게 상황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예민해지고, 평소라면 그냥 넘길 일에도 괜히 욱하고 짜증나고. 돈은 버는데 사람이 망가지는 느낌. 통장은 채워지는데 정작 내가 비어가는 기분이요. 그렇다고 통장이 막 두둑해지는 것도 아니라서 더 답답해요.
제가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금전적인 것과 이 일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에요.
자영업이야 늘 언제나 힘들지만 요즘 물가 상승으로 인해서 장사도 정말 어렵고, 손님도 많이 줄었거든요. 뭐 매출이 잘 나와도 잘 나오는 대로 신경 쓸 게 있고, 생각만큼 나오지 않으면 또 그것대로 걱정이 되잖아요. 당장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니어도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금처럼 계속 운영해도 괜찮은 건지 하는 생각이 늘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마음대로 쉬거나 일을 내려놓을 수도 없고요.
가족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일이다 보니 저 하나 힘들다고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죠.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별일 없이 평범하게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제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걸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쉬어도 되는데, 또 막상 쉬질 못하겠어요. 그것도 힘들어요.
하루 닫으면 그날 고정비는 그대로 나가고 단골 발길 끊길까 겁나고 옆 가게는 여는데 나만 쉬면 뒤처지는 것 같고.... 그래서 아파도 못 쉬고, 쉬어도 마음이 안 쉬어집니다.
자영업 하다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위안이라도 받고 싶을 때가 있어요. 혼자서 계속 생각하다가 오히려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 하소연도 하고 얘기 좀 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자영업자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당근을 통해 알게 되었고, 자영업하는 분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모임에 들어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한 번 가보고 생각보다 별로면 그냥 나오지 뭐 하고 기대 없이 나갔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마음이 편했어요.
굳이 제 상황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장사를 해본 사람들이라 짧게 말해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제 기분이 어떤지 다 알아듣더라고요. 매출 이야기부터 손님 이야기, 가족과 같이 일하면서 생기는 고민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무언가 특별한 해결책을 얻었다기보다 혼자 가게 안에서 계속 고민하던 것들을 밖으로 꺼내놓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됐어요. 이래서 사람이 상담을 받는구나? 싶기도 했고요. 같이 얘기하면서 조언도 많이 얻고 실질적으로 도움주는 분들도 생기고. 역시 이런게 정이구나,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하고 느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생 1명도 추가로 고용해서 제 쉬는 날을 더 확보했어요. 인건비는 나가겠지만 인건비 아끼다가 제 삶을 버릴 순 없으니까. 그렇게 조금 조금씩 번아웃을 극복 중이에요.
번아웃이라고 하면 꼭 큰 사건이나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어야 오는 줄 알았는데, 저처럼 별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충분히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자영업처럼 계속 신경을 곤두서야 할 일이 있고 거기다 제대로 쉬질 못하면 번아웃은 99%는 오는 것 같아요.
저는 번아웃은 혼자 버티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꼭 거창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혼자 참고만 있지 말고, 잠깐이라도 일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아직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거든요. 아직은 극복 중이기 때문에, 일은 여전히 힘듭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는 않으려고 하니깐,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아요.
힘들면 가족에게도 얘기하고 친구나 모임을 통해 꼭 내 마음을 꺼내놓으세요. 아직 세상은 따뜻하답니다. 분명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고, 좋은 말을 해줄 사람이 있을 거예요. 혼자 버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