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부부

[추석]추석날의 명절 스트레스, 시누이들과의 갈등

미국 시민권자인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내심 마음 한구석에는 나름 안도감이 있었다. 한국의 엄격한 유교식 제사 문화나 명절 스트레스로부터는 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신혼 초 미국 시댁에서 보낸 명절은 모든 게 생소했지만, 처음이니까, 잘 보이고 싶으니까 군말 없이 시부모님 뜻에 맞추어 드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과 나는 우리 부부만의 삶과 커리어에 집중하고 싶어져서, 제3국으로 거주지를 옮겨 새로운 삶을 함께 시작했다. 그러다 작년 추석에 미국 친구들도 만날 겸 진짜 완전 가벼운 마음으로 명절 인사를 드리러 미국 시댁을 방문했다.

2주 동안 푹 쉬다 와야지~ 했던 내 가벼운 기대는 완전히 깨져버렸다. 추석을 앞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휴식이 아닌 끝없는 명절 노동이었다. 명절상에 올릴 한국식 식재료를 사러 가기 위해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의 한국/아시안 마트 몇 곳을 샅샅이 뒤져야 했고 익숙지 않은 마트에서 추석 제사상에 올릴 재료를 찾아 담느라 진이 다 빠졌었다.

도착한 이튿날부터는 새벽같이 일어나 기름냄새를 뒤집어써가며 전과 튀김을 부치고, 탕을 끓이고, 잡채를 만들고 거기에 식혜까지 만들어야했다. 미국에있는 시댁에 들어왔을 뿐, 내가 하고 있는 명절 노동일은 한국에서 며느리들이 겪는 고된 굳은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갔고, 내가 왜 한국 문화와는 달리 개방된 문화를 가진 타국에까지 시집와서 이러고 있는지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진짜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추석 날, 거실에서 터졌다. 시부모님은 말을 아끼고 계셨지만, 두 시누이가 내 앞에서 쏘아붙이듯 말을 던졌다. 올케, 이제부터 매년 추석 일주일 전에는 무조건 미국 들어와. 와서 제사상 차리고 우리 가족이랑 추석 보내는 게 당연한 거야. 라며 부탁이나 양해가 아닌, 사실상의 반강제적인 명령이자 으름장이었다. 내 입장과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오직 시댁의 며느리라는 명목으로 나를 틀 안에 가두려는 상황에 짜증이 나고 당장 집으로 귀국하고 싶었다. 자유로운 미국 시댁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가부장적인 발언이 황당하고 열받았었다. 진짜 두 시누이들이 너무너무 얄밉더라. 

 

그날 밤, 답답한 마음에 마당으로 나와서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 톡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하면서 울고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신세한탄을 한 바탕하니 마음이 시원했고, 멀리 타국에서 고생하는 딸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다 현명한 조언을 건네주셨다.

"딸, 남의 눈치 보느라 네 삶의 주도권을 남한테 넘겨주지 마라. 네가 행복해야 그 가정도 건강한 거야. 억지로 다 갖추려 애쓰지 말고, 네 마음이 허락하는 선까지만 해. 그리고 그 마음을 남편과 솔직하게 나눠봐라."

엄마의 그 따뜻하고 지혜로운 한마디에 엉켜있던 마음의 타래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전화를 끊고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하면서 마음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백허그를 하면서

“내가 미안해, 누나들이 하는 말 다 따르지 않아도 돼. 중요한 건 우리가 마음을 나누는 거지, 베이비가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전통 같은 건 우리 집에 없어.”

남편이 그 말을 나에게 해주고 시누들을 주방 식탁으로 불러서 우리가 제3국에서 어떤 마음으로 우리 삶을 일궈가고 있는지,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을 진짜 똑부러지게 단호하고 명확하게 말해줬다. 남편의 적극적인 중재와 도움 덕분에, 냉랭했던 시댁의 분위기도 조금 나아졌고, 나도 바쁘지 않으면 꼭 명절이 아니더라도 종종 시부모님들 찾아뵙고 카톡으로 영통도 더 자주 할거라고 했다. 

 

내가 미국으로 시집을 왔지만, 한국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딪히는 문화적 차이와 갈등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작년 추석, 엄마의 지혜로운 조언과 남편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깨달았다.

 

명절의 본질은 무거운 형식과 유교적 의무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존중과 마음이라는 걸 말이다.

솔직히 두 시누들과 내가 완벽하게 잘 지내고 있지는 않고 불편한 눈치를 주고 있어서 여전히 갈등의 여지는 조금 남아있지만, 이제 나는 두려움으로 피하기보다 솔직하게 대화하며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도 배웠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족과 따뜻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운 잊지 못할 작년 추석의 기억이다.

 

근데 이번 추석만큼은 누가 등떠밀어서 미국으로 들어온게 아니라 온전히 내가 시부모님과 함께 시간보내고 싶다고 해서 남편과 온건데, 정말 다행히 시누이들이 왠일로 제사상 음식을 사전에 미리 다 사놓고 준비해 놓은 덕분에, 나는 음식 노동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도란도란하게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건 시누들은 저래도 시부모님들이 좋은 분들이시다. 특히 시아빠께서 지난 일에 대해 시누이들에게 한소리 단단히 하신 눈치였다. 나는 모르는척 하면서 맛있는거나 먹으면서 살을 좀 찌워서 우리집으로 가면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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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8
  • 프로필 이미지
    해피데이지
    청소년상담사
    답변수 2,249채택률 4%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작년 추석의 경험이 많이 힘드셨던 만큼, 이번에는 스스로 원해서 시댁을 찾고 편안하게 명절을 보내셨다는 이야기가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남편분이 분명하게 내 편에 서서 가족들에게 경계를 이야기해준 점도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아요.
    
    가족이라고 해서 한 사람의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할 수는 없고, 전통 역시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율되어야 오래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시누이들도 미리 준비했다고 하니 지난해의 솔직한 대화가 작게나마 변화를 만든 것일 수도 있겠네요.
    
    완전히 편한 사이가 되지 않아도 서로의 선을 존중하며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처럼 이번 추석은 맛있는 것도 마음껏 드시고, 좋은 시부모님과 도란도란 편안한 추억 많이 만들고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익명2
    작성자
    시간이 약이라고 또 지나니까 별로 마음 쓰이지 않고 헤프닝이라 생각되네요. 
  • 익명5
    명절마다 반복되는 갈등과 스트레스로 마음고생이 정말 큽니다.
    남은 휴일은 편안하게 쉬시며 지친 마음을 푹 돌보시길 바라요.
    익명2
    작성자
    글을 읽고 답글을 쓰는게 맞을텐데.. 명절마다 반복되는 갈등이라고 한적 없는데..
  • 프로필 이미지
    민트홀릭
    상담심리사
    답변수 3,358채택률 7%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타국에서 예상치 못한 명절 노동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지혜롭게 마음을 다잡고 관계를 회복해 간
    작성자님의 단단한 모습이 참 멋지게 다가와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지키라는
    친정엄마의 따뜻한 조언과 든든하게 편이 되어 준
    남편의 모습은 어두운 터널 속 한 줄기 빛 같았을 거예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요구되는 희생 속에서도
    솔직한 대화로 서로를 이해시켜 나간 과정은
    참 소중하고 값진 성장이었을 거예요
    ​지난날의 아픔을 딛고 이번 명절에는 스스로 원해서
    시부모님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오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시누이들의 변화와 시아버님의 든든한 지원 속에서
    음식 노동의 부담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니
    제가 다 안심이 되고 마음이 훈훈해져요
    ​앞으로도 타국의 삶 속에서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내 마음이 허락하는 선에서 행복을 찾아가시기를 바랄게요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고 편안한 시간 보내시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따뜻한 온기를 듬뿍 채우고 오세요
    익명2
    작성자
    가까이 살지 않아서 눈치 볼 필요없이 지내다 가면 되니 좋긴하네요
  • 익명4
    지난해에는 시누이들 때문에 정말 고생 많으셨겠어요. 
    그래도 든든하게 편을 들어준 남편분과 지혜로운 친정엄마 덕분에 잘 이겨내신 모습이 멋집니다. 
    게다가 시아버지께서 단단히 한소리 해주신 덕에 올해 추석은 편안하게 보내셨다니 제가 다 속이 시원하고 다행이다 싶네요. 
    남 눈치 보지 않고 내 행복을 챙기는 게 진짜 제일 중요하지요. 
    
    익명2
    작성자
    눈치볼거 없이 할건 하고 누릴건 누리면 되는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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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니
    상담교사
    답변수 4,671채택률 3%
    문화적 차이와 시누이들의 무례한 요구 때문에 정말 황당하고 억울하셨겠어요. 타국에서 안도감을 기대했다가 한국과 다름없는 명절 노동과 가부장적 압박을 맞닥뜨렸을 때 느꼈을 그 깊은 회의감과 외로움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친정엄마의 지혜로운 조언과, 무엇보다 당신의 편에 서서 단호하게 선을 그어준 든든한 남편이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신 모습이 참 멋지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시아버님의 묵직한 한마디와 시누이들의 사전 준비 덕분에 편안한 휴식을 누리셨다니 정말 천만다행이에요! 남아있는 앙금은 잠시 잊으시고,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따뜻하고 힐링되는 시간 가득 채워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익명2
    작성자
    오픈마인드인 나라에서 한국적 사고로 사람을 대하는게 답답할 뿐이죠 
  • 익명3
    작년 추석 때 많이 답답하고 서러우셨겠어요. 그래도 엄마의 따뜻한 조언과 남편분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모습이 정말 다행이다 싶었어요. 
    이번에는 음식 준비 걱정 없이 시부모님과 편하게 시간 보내셨다니 저도 괜히 마음이 놓이네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살도 조금 찌워서 가세요ㅎㅎ
    익명2
    작성자
    서러울게 뭐가 있나 그냥 열받고 짜증이 났었을 뿐이지 그래도 든든한 남편이 해결해줘서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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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dmap
    청소년상담사
    답변수 2,069채택률 5%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타국의 고단함 속에서도, 스스로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지혜롭게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시는 모습이 참 깊은 울림을 줍니다.
    
    작년의 그 찬바람 불던 시간과 눈물 섞인 한탄을 지나, 올해는 시누이들의 달라진 배려 속에서 한결 홀가분하고 다정하게 명절을 보내고 계시다니 제 마음까지 참 따뜻해집니다. 시아버지의 든든한 지원과 남편분의 현명한 중재도 빛을 발했지만, 무엇보다 그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면의 힘으로 이겨내신 본인의 지혜가 가장 큰 원동력이었을 거예요.
    
    "맛있는 거나 먹으면서 살을 좀 찌워서 우리 집으로 가면 되는 거다!"라는 마지막 유쾌한 멘트처럼, 이번 연휴만큼은 아무런 무게감 없이 온전히 누리시고 푹 쉬어가시길 바랍니다. 
    
    남은 시간도 웃음 가득하고 편안한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익명2
    작성자
    예전처럼 자주 왕래가 가능하지 않으니 그만큼 눈치를 덜 봐야 마음이 편할 수 있는거 같더라고요
  • 프로필 이미지
    로니엄마
    사회복지사2급
    답변수 4,021채택률 5%
    글의 마지막 부분까지 읽으니, 작성자님이 이번 추석에는 조금은 편안하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어요. 특히 마음이 상했을 때는 해결책보다 먼저 그 마음을 충분히 달래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작성자님, 추석에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입장이나 상황은 묻지도 않은 채 당연한 희생을 요구받으면 서운함을 넘어 마음이 참 아프더라고요.
    
    저도 마음이 상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덮어두기보다, 서글프면 실컷 울고 나면 조금씩 마음이 풀리더라고요. 울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부터는 힘든지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작성자님 곁에 현명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신 어머니와 든든하게 선을 세워준 남편분이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추석은 누가 등 떠밀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시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찾아가셨고, 음식 준비에서도 벗어나 편안하게 보내셨다니 저까지 마음이 놓이네요.
    
    이번에는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모르는 척(?) 좋은 시간 보내시다가 살도 조금 찌워서 웃으며 돌아가세요. 
    
    가족과 잘 지내는 것과 내가 무조건 희생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니까요. 내 마음을 지키면서도 가족과 따뜻하게 연결되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익명2
    작성자
    나를 중심으로 하는건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나를 좀 생각해주는 가족이었으면 하네요
  • 프로필 이미지
    해피푸강아지똥
    상담교사
    답변수 1,818채택률 7%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미국 시댁이라는 자유로운 환경을 기대하셨다가 예상치 못한 유교식 명절 노동과 시누이들의 황당한 으름장에 깊은 상처와 회의감을 느끼셨을 텐데, 그 막막했던 시간을 잘 견뎌내시고 지금처럼 지혜롭고 당당하게 중심을 잡으신 모습이 정말 대단하고 근사합니다.
    
    멀리 타국에서 홀로 외로웠을 딸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신 친정어머니의 현명한 조언과, 그 상황에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두 누나에게 단호하게 경계를 그어준 남편분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슴 막히는 시월드 속에서도 사연자님의 존엄과 행복을 온전히 지켜내실 수 있었네요.
    
    무엇보다 이번 추석에는 타의가 아닌 온전히 사연자님의 마음이 내켜서 찾아가셨고, 시아버지의 단단한 한마디 덕분에 시누이들이 미리 음식을 준비해둔 덕에 노동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명절을 즐기고 오셨다니 정말 사이다처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깊이 깨달으신 것처럼, 명절의 본질은 일방적인 희생과 과도한 형식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존중과 애정입니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과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가족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를 직접 체득해 내신 사연자님이 참 장하고 멋지십니다.
    
    여전히 시누이들과의 약간의 서먹함이나 눈치 싸움은 잔재로 남아있겠지만, 이제는 든든한 내 편인 남편과 지혜로운 내 기준이 있으니 전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모르는 척 맛있는 음식 챙겨 드시면서 마음 편히 휴식을 누리시고, 사연자님만의 행복하고 건강한 일상으로 가볍게 복귀하시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익명2
    작성자
    작년 추석이 그렇게 잘 마무리 되어서 이번 추석에 잘 쉬다가 가네요. 매년 이런식이라면 부담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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