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물건이 아니라 일을 자꾸 잃어버립니다

제 방은 의외로 깔끔한 편입니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진 않아요. 그런데 해야 할 일을 자꾸 잃어버립니다. 말이 이상하죠?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
컵을 씻으러 주방에 갑니다. 싱크대 앞에서 휴지를 발견하고 쓰레기통에 넣으려다가 비닐봉지가 꽉 찬 걸 봅니다. 봉지를 묶고 현관으로 가져가는데 택배가 와 있습니다. 택배를 뜯다가 새로 산 물건의 설명서를 읽습니다. 한참 뒤에 물을 마시러 주방에 가면 컵은 그대로 있습니다. 제가 컵을 씻으려고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때 떠올립니다.
​
한두 번이면 웃고 넘기겠어요. 그런데 하루에 비슷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어제는 이메일 답장 하나 보내려고 컴퓨터를 켰다가 파일 정리만 하고 껐습니다. 메일은 밤에 다시 알림이 뜨고 나서야 생각났어요.
​
주변에서는 멀티태스킹을 잘한다고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손대고 있으니까요. 실상은 끝낸 일이 적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모든 일이 동시에 중요해지고, 눈앞에 보이는 게 그때그때 우선순위가 됩니다.
​
재미있는 건 정말 관심 있는 일을 할 때는 몇 시간이고 붙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제 성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집중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집중 방향을 제가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
최근에는 해야 할 일의 첫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해봅니다. '나는 지금 컵을 씻는다.' 그런데 중간에 또 딴일이 생기면 그 말을 잊습니다. 메모도 해봤는데 메모를 쓰다가 생각이 옆으로 갑니다.
​
성인 ADHD 관련 평가를 받아볼 생각은 있지만 아직 결정하진 못했습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어떤 방식으로 '시작한 일을 끝낼 때까지 이어가기'를 연습하셨나요? 방은 정리됐는데 제 하루는 늘 미완성인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hub-link

지금 ADHD를 주제로 8.3천명이 이야기 중

댓글0

ADHD 인기글

ADHD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