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가 힘든 일을 저한테는 말하지 않고 다른 친구에게 먼저 털어놨다는 걸 알고 서운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친밀함과 상대가 느끼는 친밀함이 꼭 같지는 않다는 걸 최근에 좀 실감했어요.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있어요. 평소에 자주 연락하고 사소한 일도 서로 이야기하는 사이예요. 저는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비교적 편하게 털어놓는 편이었고, 친구도 저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왔어요.
그런데 얼마 전 여러 사람이 함께 만난 자리에서 제가 전혀 모르던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친구가 한동안 개인적인 문제로 많이 힘들었다는 거예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친구에게 자주 연락하며 의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어요.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괜찮냐고 물었고 힘든 시간을 보냈겠다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묘하게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친구가 힘들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지만, 그동안 저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신경 쓰였어요.
그렇다고 제가 친구의 모든 일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개인적인 일을 누구에게 이야기할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거고, 친한 사이라고 모든 고민을 공유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감정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저는 그 친구를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정말 힘들 때는 제가 떠오르지 않았던 걸까 싶었어요.
혹시 제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요?
평소에 친구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저는 이것저것 물어보는 편이에요.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질문들이 친구에게는 부담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너무 제 입장에서만 해석하는 것 같기도 해요.
힘든 일이 생기면 평소 친한 사람보다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할 수도 있잖아요. 그 친구가 어떤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연락했는지 저는 알지 못해요.
그런데도 자꾸 저와 그 사람을 비교하게 되네요.
며칠 뒤 친구에게서 평소처럼 연락이 왔어요. 별다른 용건 없이 점심 메뉴를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였어요.
예전 같으면 별생각 없이 대답하고 웃고 떠들었을 텐데, 그날은 괜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어요.
힘든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하고 이런 사소한 이야기는 나한테 하는 건가 싶어서요.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저도 놀랐어요.
친구가 저에게 가벼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왜 나쁜 일이겠어요. 편한 사이니까 그런 이야기도 하는 거겠죠.
그런데 저는 친구가 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확인할 증거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증거가 힘든 일을 누구에게 먼저 털어놓았느냐는 사실이었던 거고요.
얼마 전에는 저도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평소 같으면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을 일인데 이번에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어요.
친구도 나한테 모든 걸 말하지 않으니까 나도 그럴 필요 없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행동하고 나니 더 찜찜했어요.
친구에게 상처받았다고 말한 적도 없고, 친구는 제가 서운해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데 혼자 마음속에서 관계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 거잖아요.
생각해 보면 친한 사이에도 각자 이야기하기 편한 주제가 다를 수 있겠죠.
어떤 친구에게는 현실적인 조언을 구하고 싶을 수도 있고, 다른 친구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싶을 수도 있고요.
저 역시 친구마다 이야기하는 내용이 달라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선택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너무 크게 남았어요.
이런 마음을 친구에게 솔직히 말해야 할까요?
왜 나한테는 이야기 안 했냐고 묻는 순간 상대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요.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저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에는 아직 마음이 조금 불편해요.
저는 친구가 저를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믿는다는 게 모든 고민을 저에게 털어놓는다는 뜻은 아닐 텐데요.
친구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 사이의 친밀함을 받아들이고 싶은데, 아직은 생각처럼 잘 안 되네요.
가까운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