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잘못했으면 사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요즘은 이 당연한 걸 가지고 제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 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는 사람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자존심이 센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관계가 정상적인 건지 의문이 듭니다.
그 사람과 의견이 부딪히면 항상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분명 상대방이 먼저 기분 나쁜 말을 했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는데, 제가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면 오히려 본인이 더 기분 나빠합니다.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으면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제 반응이 지나치다는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한번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저를 무안하게 만드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웃고 넘어갔는데 집에 돌아와서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따로 연락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불편하다고 했더니 갑자기 말투가 차가워지더군요. 장난으로 한 말인데 그렇게까지 받아들일 줄 몰랐다면서 오히려 저한테 서운하다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그날 대화는 제대로 끝나지도 못했습니다. 상대방은 제가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저는 제 감정을 이야기한 것뿐인데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그 이후였습니다. 그 사람이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제가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처음 며칠은 저도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제가 먼저 연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렇게까지 관계를 불편하게 유지해야 하나 싶고,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볼 사람인데 그냥 제가 먼저 연락해서 풀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연락했습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사과까지 했네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습니다. 분명 상대방이 먼저 잘못한 상황이었는데 제가 머리 아픈 게 싫어서 그냥 잘못했다고 해버린 겁니다.
그렇게 화해하고 나면 당장은 편합니다.
어색하게 지내지 않아도 되고 연락할 때마다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마음이 더 불편해집니다. 왜 내가 사과했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또 먼저 숙였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남거든요.
무엇보다 상대방이 제가 사과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본인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제가 먼저 사과하면서 상황이 정리됐으니 결국 본인이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겨도 굳이 먼저 사과할 이유가 없을 것 같고요.
그런데 여기서 저 자신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억울하면 그냥 연락하지 않고 지내면 되는 건데 저는 왜 그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걸까요?
상대방이 먼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을 혼자 계속 생각하다가 결국 제가 먼저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상대방을 원망하고 있으니 저도 참 피곤한 성격인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런 사람한테 왜 계속 맞춰주냐고 합니다. 저도 남의 이야기라면 똑같이 말했을 것 같아요. 잘못한 사람이 사과해야 하고,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굳이 먼저 화해할 필요가 없다고요. 그런데 막상 제 일이 되면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싸우고 나서 연락이 끊긴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그 일이 떠오릅니다. 휴대폰을 확인하면서 혹시 연락이 왔나 싶고, 괜히 그때 했던 대화를 다시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보다 그냥 이 불편한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집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먼저 사과하는 이유가 상대방을 이해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을 견디는 게 너무 싫은 거죠. 당장 마음 편해지고 싶어서 제 감정을 뒤로 미루는 건데, 그렇게 넘어간 감정은 결국 사라지지 않고 쌓이더라고요.
가끔은 상대방도 이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제가 먼저 연락할 거라는 걸 아니까 본인은 굳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물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번 같은 방식으로 화해하다 보니 관계에서 제가 점점 더 약한 입장이 되는 기분입니다.
이제는 사과라는 말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원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말인데, 저는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분위기를 끝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진심으로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먼저 사과하는 게 과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는 무조건 끝까지 버티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조금 유치하게 느껴집니다. 누가 먼저 연락하나 자존심 싸움을 하자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단지 상대방도 본인이 잘못했을 때는 인정하고, 제 감정 역시 존중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네요.
저는 이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먼저 화해를 시도하는 것과 잘못하지 않은 일까지 사과하는 건 분명 다른 문제일 텐데, 막상 갈등이 생기면 그 차이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먼저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일 때, 관계가 불편해지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제 입장을 지켜야 하는지도 고민입니다. 매번 제가 먼저 숙이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이제는 그 사람뿐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화가 납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끝까지 따지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서도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계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 제 감정을 계속 포기하는 습관부터 바꿔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