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입니다.
아내하고도 잘 지내고 아이하고도 크게 문제없이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이었어요.
거실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옆에 와서 한참을 서 있더라고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대뜸 저한테 오늘 기분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냐고 했더니 그냥 궁금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잠깐 망설이다가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별문제 없는 약속이라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바로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아내가 저한테 아이가 요즘 당신한테 뭔가 부탁할 때마다 먼저 기분부터 확인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아이는 저한테 뭘 부탁하기 전에 꼭 제 얼굴을 한 번 살핍니다.
제가 소파에 누워 있으면 옆에 와서 한참 기다리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제가 피곤해 보이면 그냥 방으로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반면 아내한테는 그러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하고 안 된다고 하면 이유를 묻거나 투정도 부립니다.
저한테는 이상하게 그런 모습을 별로 보이지 않아요.
처음에는 제가 아빠니까 조금 더 어려워하는 거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아이한테 직접 물어봤어요.
아빠한테 부탁할 때 왜 자꾸 기분이 좋은지부터 물어보느냐고요.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아빠는 피곤할 때 물어보면 짜증 내잖아."
그 말을 듣는데 순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이니까 피곤하면 짜증을 낼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아이가 계속 말을 걸거나 뭘 해달라고 조르면 나중에 하자고 한 적도 많았고요.
그런데 아이가 그걸 이렇게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아이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더라고요.
"아빠 지금 피곤하니까 이따 이야기하자."
"그런 건 엄마한테 물어봐."
"지금 꼭 해야 되는 이야기야?"
저는 그냥 그 순간 귀찮거나 피곤해서 했던 말들이었습니다.
화가 나서 심하게 혼낸 것도 아니고 아이를 일부러 무시하려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제가 언제 짜증을 낼지 모르니까 먼저 눈치를 보는 습관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한테 무서운 아빠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다.
아이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주말에는 같이 게임도 합니다.
둘이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 밤에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더 이상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친한 관계와 아이가 느끼는 관계는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습니다.
제가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대답을 했거든요.
아이가 "아빠 바쁘면 나중에 이야기할게"라고 하는데 그 말이 괜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잠깐 메시지를 확인한 것뿐인데 아이는 제가 자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휴대폰을 내려놓고 계속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별것 아니라면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더라고요.
평소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그 뒤로는 일부러 아이한테 좀 더 다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퇴근하면 먼저 말을 걸고,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참 어색하네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갑자기 다정하게 행동하려니까 저 스스로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아이는 오히려 제가 왜 그러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요.
며칠 전에는 아이가 저한테 과자를 먹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평소라면 밥 먹기 전이니까 조금만 먹으라고 했을 텐데 그날은 괜히 마음이 쓰여서 그냥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저를 보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잘해줘?"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웃기는 했는데 속으로는 좀 씁쓸했습니다.
제가 아이한테 잘해주는 게 특별한 일처럼 느껴진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아이가 원하는 걸 무조건 들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 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혼낼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저한테 뭔가를 물어보기 전에 허락받을 만한 분위기인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관계는 싫습니다.
솔직히 저도 조금 억울한 마음은 있습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 상대하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그런 시간까지 포기해야 좋은 아빠가 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아이가 제 표정을 살피던 모습이 생각나면 그 정도는 제가 조절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고요.
요즘은 아이하고 대화할 때 제가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같습니다.
평범하게 대답하고 나서도 말투가 퉁명스럽지는 않았는지, 표정이 굳어 있지는 않았는지 혼자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집에서까지 제 행동을 계속 점검하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 피곤하기도 합니다.
제가 궁금한 건 이미 아이에게 생긴 이런 습관을 어떻게 바꿔줘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냥 앞으로 조금씩 부드럽게 대하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달라질까요?
아니면 제가 예전에 짜증 냈던 일들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요?
괜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아이가 더 신경 쓰게 되는 건 아닌지도 걱정됩니다.
사실 아이는 지금도 저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잘 안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 관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아이가 아빠를 좋아하는 것과 아빠 눈치를 보는 건 얼마든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저한테 뭘 부탁하면서 제 기분부터 확인하지 않아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피곤해 보이는 날에도 그냥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는 아빠였으면 하는데, 지금까지 제가 해온 행동을 생각하면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코치님 덕분에 고민이 해결되사과하고 아이에게 괜찮다는 답을 바라지 않는 것도 기억해야겠어요. 쉬고 난 뒤 제가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세심한 말씀 감사해요.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