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만 해도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하고, 회사 다니면서 월급을 모으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결혼하고 작은 집이라도 마련해서 가족을 꾸리는 삶이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과정인 줄 알았거든요.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크게 성공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막상 30대가 되고 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평범한 삶이라는 게 생각보다 너무 비싼 것 같네요.
저도 직장을 다니고 있고 매달 월급도 꼬박꼬박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월급 들어오는 대로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여행 다니면서 사는 것도 아니고요. 나름 아낄 건 아끼고 저축도 하면서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몇 년이 지나도 크게 나아졌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잠깐 든든할 뿐, 각종 생활비가 빠져나가고 한 달 동안 쓸 돈을 남겨놓고 저축할 금액을 계산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더군요. 이 돈을 앞으로 몇 년이나 모아야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계산해보다가 어느 순간 계산 자체를 그만두게 되더라고요.. 몇 년 동안 열심히 모으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집값 같은 큰 숫자를 보고 있으면 제가 모은 돈은 갑자기 너무 작게 느껴집니다.
부모님은 처음부터 좋은 집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냐고 하십니다. 작은 집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넓혀가면 된다고 하시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요. 저도 처음부터 좋은 아파트에서 살겠다는 게 아닌데, 제가 생각하는 작은 집조차 시작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더라고요. 모아둔 돈을 거의 다 넣고 대출까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과연 그렇게까지 해서 집을 사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요.
결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사람 만나면 자연스럽게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도 감정보다 현실적인 조건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둘이 어디서 살지, 집은 어떻게 구할지, 결혼 준비에 들어가는 돈은 어떻게 할지, 앞으로 아이까지 생각한다면 생활비는 얼마나 필요할지 이런 것들이 먼저 생각나요.
사람만 좋으면 둘이 힘을 합쳐 살면 된다는 말도 많이 듣는데, 막상 제 입장이 되니까 그 말처럼 간단하게 생각되지 않더라고요. 둘이 벌면 지금보다 낫겠지만 아이가 생기거나 한쪽이 일을 쉬게 되는 상황까지 생각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고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벌써 걱정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시작하기에는 제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아이 문제까지 생각하면 더 겁이 납니다. 무조건 비싼 걸 해주고 좋은 환경만 만들어줘야 한다는 욕심은 없어요. 그래도 적어도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매번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고, 부모가 된 이상 어느 정도 안정적인 환경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나씩 생각하기 시작하면 필요한 돈이 끝도 없이 늘어납니다.
집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비상금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아이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돈도 있어야 할 것 같고, 노후 준비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순간 머리가 멍해집니다. 나는 지금 당장 몇 년 뒤 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벌써 몇십 년 뒤까지 준비해야 한다니,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 싶어요.
친구들을 만나도 예전과 대화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회사 욕이나 연애 이야기하면서 웃고 끝났는데 이제는 누가 집을 샀다거나 결혼 준비를 한다거나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물론 축하할 일이고 저도 잘됐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묘합니다.
남들에게는 그냥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는 것들이 저한테는 엄청 큰 목표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친구가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다는 생각보다 저걸 마련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했을까부터 생각하고,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결혼 비용과 집 걱정부터 떠오릅니다.
저도 모르게 모든 걸 돈으로 계산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제가 너무 삭막해진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예전에는 결혼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는데 지금은 결혼하려면 얼마가 필요할까가 먼저 떠오르고, 아이를 보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 한 명 키우려면 정말 돈이 많이 들겠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이렇게까지 현실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말이죠.
더 답답한 건 시간은 계속 지나간다는 겁니다. 지금보다 연봉이 조금 더 오르면 괜찮아지겠지 싶다가도 그때는 물가도 지금보다 올라 있을 것 같고, 몇 년 더 모으면 집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 싶다가도 그때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 들어요.
가끔은 그냥 다 포기하고 현재를 즐기면서 살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어차피 몇십만 원 더 아낀다고 갑자기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먹고 싶은 거 먹고 여행도 다니면서 살면 조금은 행복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런데 막상 돈을 쓰려고 하면 또 불안합니다.
지금 이렇게 써버리면 몇 년 뒤에 후회하는 거 아닐까 싶고, 남들은 열심히 자산을 만들고 있는데 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아끼면 현재가 답답하고, 쓰면 미래가 불안하니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가장 무서운 건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버리는 겁니다.
돈이 부족할까 봐 결혼을 미루고, 집이 없어서 뭔가 시작하기를 망설이고, 미래가 불안해서 현재에는 돈 한 번 제대로 못 쓰면서 살다가 어느 순간 40대가 되어 있을까 봐 겁이 납니다. 그때 가서 돌아보면 나는 대체 뭘 그렇게까지 걱정하면서 살았나 싶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지금 당장 아무 준비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살 자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제가 현실적인 건지 그냥 겁이 많은 건지도 헷갈립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한 뒤에 시작하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부모님 세대에서 흔히 말하는 평범하게 살면 된다는 말이 요즘에는 참 어렵게 들립니다.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적당한 집 하나 마련하고, 결혼해서 가족을 꾸리고, 가끔 여행도 다니면서 노후까지 준비하는 삶이요. 말로 들으면 정말 평범해 보이는데 하나씩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어느 것 하나 쉽게 느껴지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냥 평범하게라도 잘 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네요.
이런 불안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현실을 너무 크게 겁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지금 같은 시대에는 이 정도 걱정을 하면서 사는 게 당연한 걸까요?
모든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면 평생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중요한 선택을 했다가 나중에 감당하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섭습니다.
솔직히 이제는 괜찮을 거라는 말보다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제가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가지려고 하는 거라면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해주셔도 되고, 미래가 무섭다는 이유로 지금의 인생까지 미루고 있는 거라면 정신 차리라고 해주셔도 됩니다.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 자체를 조금 내려놔야 하는 건지, 아니면 불안하더라도 하나씩 부딪쳐보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