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가족들 모이는 날짜를 잡으려고 단톡방에 먼저 연락을 했어요. 다들 언제 시간이 되냐고 물어보고, 날짜 몇 개 골라서 올리고, 누구는 이날 안 되고 누구는 저날 안 된다고 해서 다시 맞추고요. 그러다 문득 내가 왜 또 이걸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명절이나 생일, 가족끼리 한번 밥 먹는 날까지 생각해보면 늘 제가 먼저 말을 꺼냈던 것 같아요. 이제 슬슬 날짜 정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그제야 다들 자기 일정을 이야기하고, 어디에서 만날지 정하는 것도 결국 제가 먼저 몇 군데 알아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별생각이 없었어요. 가족들 얼굴 보고 밥 한 끼 먹는 게 좋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그냥 제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음식 준비하고 치우는 게 힘들어도 다 먹고 나서 잘 먹었다는 말 들으면 그걸로 됐다고 넘겼고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이것도 점점 힘에 부치네요. 음식 몇 가지 준비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고, 장 한번 보고 오면 허리부터 아파요. 그래서 요즘은 밖에서 먹는 날도 많은데 그렇다고 편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식당 알아보고 예약하고 가족들 시간 맞추는 일은 그대로니까요.
한번은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해본 적이 있어요. 이번에는 누군가 먼저 이야기하겠지 싶어서 기다렸습니다. 날짜가 가까워지는데도 아무도 말을 안 하더라고요. 며칠 남지 않아서 결국 제가 먼저 이번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제야 다들 아 맞다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순간 좀 허탈했어요.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물론 다들 바쁜 건 알아요. 자식들은 자기 생활이 있고 각자 챙길 일도 많겠죠. 남편도 이런 걸 세세하게 챙기는 성격은 아니고요. 누가 일부러 저한테 다 떠넘기려고 그러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런데 늘 한 사람이 먼저 챙기는 게 당연해지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끔은 나도 누가 날짜 정해놓고 이날 시간 되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로 오면 된다고 해주고 저는 그냥 몸만 가는 날도 한번 있었으면 좋겠고요. 대단한 걸 바라는 것도 아닌데 왜 항상 제가 사람들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더 이상한 건 그렇게 힘들어서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다가도 가족들이 따로따로 지내는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쓰인다는 거예요. 명절인데 얼굴 한번 안 보고 지나가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생일인데 가족끼리 밥 한 끼 안 먹으면 괜히 허전할 것 같고요.
그러니 결국 제가 또 연락합니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도 답답해요. 힘들다면서 왜 또 나서나 싶은데, 제가 손을 놓으면 정말 아무도 안 챙길 것 같으니까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더라고요.
예전에는 가족들이 모이면 북적거리고 정신없어서 혼자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챙기지 않으면 모임 자체가 흐지부지되는 걸 보니까 그것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귀찮고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가족인데 가끔은 얼굴 보고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계속 왔다 갔다 합니다.
무엇보다 서운한 건 가족 모임 자체보다 아무도 먼저 챙겨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아요. 저도 누군가가 챙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가끔은 챙김을 받는 쪽이 되고 싶은데, 가족들은 제가 원래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번에도 날짜를 정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또 제가 다 했다는 생각에 씁쓸합니다. 다음부터는 정말 먼저 연락하지 말아볼까 싶은데 막상 때가 되면 또 제가 먼저 휴대폰을 들 것 같네요.
다른 집들도 명절이나 가족 모임은 늘 한 사람이 먼저 챙기나요? 제가 한번 손을 놓고 가족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동안에는 조금 힘들어도 계속 챙기는 게 나을까요? 다들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