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소통자기이해·성장

사람들이 저보고 털털해서 좋다고 할수록 불편한 일이 있어도 싫다는 말을 못 하겠어요

저는 주변에서 털털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웬만한 일에 화를 안 내고, 누가 장난을 쳐도 잘 받아주고, 작은 실수는 그냥 넘어가는 편이긴 해요.

 

그런데 요즘은 그 털털하다는 말이 좀 부담스러워요.

 

얼마 전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제 물건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썼어요. 돌려받았을 때는 상태가 좀 지저분해져 있었고요.

 

솔직히 기분이 안 좋았어요. 빌려달라고 했으면 당연히 빌려줬을 텐데 말도 없이 가져간 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상대가 웃으면서 이러더라고요.

 

"넌 이런 거 신경 안 쓰잖아. 워낙 털털해서."

 

그 말에 저도 그냥 웃었어요.

아, 맞아. 괜찮아. 뭐 그런 식으로요.

 

속으로는 하나도 안 괜찮았는데 말이죠.

 

집에 와서 생각하니 더 짜증이 났어요. 물건을 마음대로 사용한 사람한테도 화가 났지만, 그 자리에서 괜찮다고 해버린 제 자신한테 더 화가 났어요.

 

비슷한 일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있어요.

 

음식점을 정할 때 제가 먹고 싶은 메뉴가 있어도 누군가 다른 걸 먹자고 하면 별말 없이 따라가요.

 

친구들이 저보고 성격 좋다면서 아무 데나 가도 잘 먹는다고 해요. 사실은 가끔 싫은 메뉴도 있는데요.

 

지난번에는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갔다가 속이 불편했어요. 그때도 그냥 맛있게 먹는 척했네요.

 

그러고는 다음 모임에서 또 제가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제가 직접 만들어놓은 이미지이기도 하겠죠.

 

문제는 이제 싫다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일까 봐 걱정된다는 거예요.

 

'네가 이런 걸 다 따지네?'

'원래 그런 성격 아니잖아.'

 

아직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혼자 미리 예상하고 있어요.

 

생각해 보면 털털하다는 게 불편한 일을 전부 참는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유지하려고 조금씩 양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더 답답한 건 상대가 제 불편함을 아예 모른다는 거예요.

 

제가 괜찮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혼자 서운해하고 화를 내는 것도 공평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상대는 제가 싫어한다는 걸 알아볼 기회조차 없었던 거니까요.

 

얼마 전에는 누가 제게 부탁을 했을 때 처음으로 오늘은 어렵다고 말해봤어요.

 

그랬더니 상대가 그냥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더 당황했어요. 그렇게 어렵게 생각했던 거절이 상대에게는 별일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데도 다음번에는 또 망설일 것 같아요.

 

털털하다는 칭찬은 여전히 듣기 좋거든요. 그 말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요.

 

저도 앞으로는 기분 좋은 일에는 웃고, 싫은 일에는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성격이 변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네요.

 

남들에게 익숙해진 제 모습에서 조금 벗어나려면 이런 어색함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걸까요?

댓글2
  • 프로필 이미지
    mindmap
    청소년상담사
    답변수 2,431채택률 5%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털털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어느 순간 그 평가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생기셨던 것 같습니다. 싫어도 웃어넘기고 불편해도 괜찮다고 말하다 보면 정작 내 마음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지요. 상대방에게 화가 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자신에게 더 속상했던 마음도 이해됩니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인정과 관계의 조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을 자기희생적 행동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특히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잃고 싶지 않을수록 거절을 관계에 대한 위협처럼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털털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거나 상대에게 무조건 맞춰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편안하게 표현하면서도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한 털털함에 가깝습니다.
    
    이미 한 번 어렵다고 말했을 때 상대가 별다른 문제 없이 받아들였던 경험을 기억해 보세요. 앞으로도 처음부터 큰 거절을 하기보다는 "저는 이 메뉴가 더 먹고 싶어요", "다음에는 사용하기 전에 먼저 물어봐 주세요"처럼 작은 표현부터 연습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잠시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더라도 그것이 관계가 나빠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글쓴님, 사람들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남기 위해 자신의 마음까지 양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어도 여전히 털털하고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만큼 자신에게도 편안한 사람이 되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 프로필 이미지
    로니엄마
    사회복지사2급
    답변수 4,394채택률 5%
    작성자님, 털털하다는 칭찬이 어느 순간 작성자님에게는 지켜야 할 역할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쓰였습니다.
    
    원래 털털하다는 건 작은 일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실수도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다는 뜻이지, 내 물건을 함부로 사용해도 괜찮고 내가 싫어하는 일까지 웃으며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순간에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웃으며 괜찮다고 했을 작성자님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어쩌면 싫다는 말을 못 한 것보다, 싫다는 마음을 표현하면 지금까지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던 내 모습이 달라질까 봐 그게 더 두려웠던 건 아닐까요.
    
    그런데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성자님이 그동안 보여준 털털함이 거짓이었던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자기주장을 한다고 성격이 변한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나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은 함께 존재할 수 있어요.
    
    오히려 상대가 작성자님의 불편함을 모르는 것은 작성자님이 괜찮다고 표현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그동안의 자신을 탓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관계를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고, 거절하는 것보다 웃어넘기는 것이 익숙했을 테니까요.
    앞으로는 아주 작은 것부터 달라져도 좋겠습니다.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면 "다음부터는 쓰기 전에 먼저 물어봐 줘. 나도 내 물건은 소중하게 쓰고 싶거든"이라고 말하고, 음식 메뉴를 정할 때도 "나는 오늘 이게 먹고 싶어"라고 먼저 이야기해 보는 거예요.
    
    거절할 때마다 긴 설명을 덧붙이거나 미안해할 필요도 없어요. 싫은 것은 싫다고,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말하는 데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누군가 "네가 이런 것도 따지네?"라고 말한다면, "나도 좋아하는 건 편하게 양보하지만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지"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해도 좋겠습니다.
    
    작성자님,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불편한 사람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털털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잃지 않으려고 자신의 마음을 자꾸 뒤로 미루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작성자님은 언제나 웃어주는 사람이어야 사랑받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양보해야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니까요.
    
    조금 어색해도 괜찮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새롭게 알아가는 작성자님의 모습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하겠지요.
    
    진짜 털털한 사람은 싫은 것도 참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편안한 사람인 동시에, 작성자님 자신에게도 편안한 사람이 되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코치에게 묻기 인기글

💬 코치에게 묻기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