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몸살이 세게 오려고 하는건지 전신 근육이 다 아프고 머리가 멍했다.
그래도 일을 놓을 수가 없어서
피씨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보호자가 액팅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일이야 병원에서는
하루에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번 소동은 쉽게 가라앉을 소동이 아닌 듯 했다.
당장 손이 남는 동료 몇 명이 복도로 달려갔다.
짝,하는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일순간 정적이 복도를 휘감았다.
-이런 일이야 병원에서는
하루에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 액팅의 이유는
'아픈 환자 앞에서 간호사가 웃었다'였다.
폭력의 이유는 소리를 지르는 보호자에게
담당 간호사가 참지 못하고
"그럼 저희는 매일 울고 있어야 하나요?"라고 말한 탓이였다.
흥분한 보호자와
놀라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간호사를 간신히 떼어놓았다.
모두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은 사치이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흥분한 보호자도 수습해야 하고
터지는 눈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람의 일까지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니까.
-이런 일이야 병원에서는
하루에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이다-
슬픔은 전염된다고 하던가.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니였고,
처음 겪는 일도 아니였다.
하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그날 심리적인 직격탄을 맞은 건 이상하게도 나였다.
퇴근한 뒤부터 열이 펄펄 나기 시작하더니
다음 날 눈을 뜨니까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힌 듯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뇌는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민감하도록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예민함이 과도하게 발달되고
공감 능력까지 있다면 쉽게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데
세상 모든 고통을 내 것처럼 느껴지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짓눌려 고통스러워지고
결국에는 공허해지는 것.
그렇게 나의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환자에게
동정(sympathy)이 아닌 공감(empathy)을 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공감은 남의 감정이나 의견에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을 말하며
동정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듯하지만 엄연히 다른 말이다.
우리가 환자의 상황에 공감하지만 동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환자의 상황에 필요 이상으로 몰두하게 되면
결국 환자도, 나도 고통에 함몰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항상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하루에 나를 돌보지 못하고
어느 순간 속부터 곪아가고 있었나보다.
하루에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던 비슷비슷한 사건 중에 하나가
나를 와르르 무너뜨렸고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우울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일을 그만두지 않고 잠깐의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간신히 남아있는 실낱같은 이성의 끈을 붙들고
딱 이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양치하고, 세수하기.
그리고 그 다음은 옷 갈아입기,
현관에 온 택배 수거하기,
제대로 밥 차려서 먹기,
아파트 딱 한바퀴만 돌고 오기...
너무나 평범한 하루의 일과이지만
손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우울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때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우울증을 이기는 방법은 사실 대단하지 않다.
누워있다면 앉아보는 것,
앉아있다면 일어서보는 것,
일어섰다면 이제 한 발자국을 걸어보는 것.
그렇게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
내일은 더 밝고, 따뜻한 날이 될 것을 기대하며
아직 흔들거리지만 내가 조금씩 발을 떼는 것처럼
당신도 할 수 있다.